문득 이웃 아낙의 다듬이 소리 들리네(忽聞隣女擣衣聲·홀문린녀도의성)
가을 달빛 비치고 은하수 밝은 밤에(霜天月照夜河明·상천월조야하명)/ 나그네는 돌아갈 생각에 감회가 애틋하네.(客子思歸別有情·객자사귀별유정)/ 긴 밤을 앉았노라니 수심에 애타는데(厭坐長宵愁慾死·염좌장소수욕사)/ 문득 이웃 아낙의 다듬이 소리 들리네.(忽聞隣女擣衣聲·홀문린녀도의성)/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바람결에 소리 실려 오는데(聲來斷續因風至·성래단속인풍지)/ 밤 깊어 별이 지도록 잠시도 그침이 없네.(夜久星低無暫止·야구성저무잠지)/ 고국을 떠나온 뒤 듣지를 못했는데(自從別國不相聞·자종별국불상문)/ 지금 타향에서 같은 소릴 듣네.(今在他鄕聽相似·금재타향청상사)
양태사(楊泰師)의 시 ‘夜聽擣衣聲(야청도의성·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로, 일본 문인 이치가와 간사이(市河寬齋·1749~1820)의 ‘일본시기(日本詩紀)’에 실려 있다. 그가 발해 제3대 왕인 문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가 읊은 시 24행 중 앞부분이다.
문왕 21년(758) 정사 양승경, 부사 양태사 등 23인 발해사절단이 일본으로 갔다. 그해 9월 일본 에치젠(越前)에 도착한 일행은 3개월간 그곳에 체류했고 거기서 이 시를 지었다. 현재 동해 연안 후쿠이현 북부다. 일행은 12월 24일에야 일본 왕경이 있는 헤이조코(平城京·현 나라)에 가 이듬해 1월 18일 순인천황에게 국서를 올렸다.
1월 17일 당시 일본 실력자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일행을 초대하여 연희를 베풀었다. 여기서 양태사는 답례로 지어놓은 이 시와 ‘기노 아소미 공이 눈을 노래한 시에 화운하여(奉和紀朝臣公咏雪詩·봉화기조신공영설시)’ 두 편을 주었다. 양태사는 발해 사신으로 일본에 가 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 고향을 떠올렸다. 발해 도읍은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영안현 발해진에 있던 상경용천부(상경성)에 있었다. 문왕이 785년께 현 길림성 훈춘시 팔련성의 동경성으로 수도를 옮겼고 5대 성왕 때 다시 상경성으로 천도했다. 상경용천부는 926년 거란에 멸망할 때까지 135년간 발해 수도였다.
중국 동북공정이 한창일 때 필자는 발굴 중이던 상경용천부와 동모성과 육정산,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토크 등 발해 유적지를 취재하면서 양태사의 시 등을 접했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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