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74] 종교와 투기
투기와 버블은 어느 정도 종교와 관련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이루고서도 이렇다 할 투기가 없었다. 둘 다 가톨릭 국가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이탈한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투기와 버블 붕괴가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1637년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버블이, 1720년 영국에서는 주식 버블이 터졌다. 그 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투기도 잠잠했다. 하지만 7년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위기가 또 터졌다. 1763년 네덜란드에서 드 뉴필이라는 작은 은행이 파산했다. 그 은행이 집중 투자했던 식민지 수리남의 대농장에서 폭동이 일어난 탓이다. 드 뉴필은 레버리지 투자, 즉 빚을 내어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은행이 파산하자 그를 ‘졸부’라고 부르며 거리를 두던 건전한 은행들까지 연쇄 부도의 위기로 몰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똑같았다.
그로부터 9년 뒤에는 영국에서 위기가 터졌다. 이번에도 투기가 원인이었다. 쟁쟁한 집안 출신의 알렉산더 포디스라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빚을 내어서 동인도주식회사 주식에 레버리지 투자를 했다. 그런데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계속 하락했다. 빚 독촉에 몰린 포디스는 파산하고, 그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까지 쓰러졌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도 그 위기는 금융 후진국 영국이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가 영국을 도우려 나섰다. 두 나라가 똑같은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경쟁하지만, 개신교 형제 국가의 환난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가를 지탱하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상업은행들이 투자금을 모았다. 그것이 세계 최초의 해외 투자 펀드였다.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절제와 금욕을 강조하지 않았다. 근면과 청부(淸富)를 강조할 뿐이었다. 절제를 모른 채 부지런히 부자가 되려던 개신교 신자 알렉산더 포디스가 1772년 오늘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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