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75] 지도자의 콤플렉스

bindol 2022. 6. 15. 04:52

[차현진의 돈과 세상] [75] 지도자의 콤플렉스

입력 2022.06.15 00:00
 
 

어떤 역사에서든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인물은 애잔하게 평가된다. 금강산으로 숨어 들어간 신라의 마의태자나 평생 한·미·일을 떠돌았던 대한제국의 영친왕이 그러하다.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 시신조차 사라져서 전설로 남아버린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야 공주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프로이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동자라는 낙인 때문에 독일인들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다. 그는 황태자 시절부터 땅 욕심이 대단했다. 외할머니인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를 써서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생일 선물로 받아낼 정도였다. 덕분에 가수 조용필이 노래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노니는 곳이 영국령 케냐에서 독일령 탄자니아로 바뀌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가 즉위한 지 99일 만에 급사하는 바람에 빌헬름 2세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 29세의 새 황제는 ‘세계 정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땅 욕심을 실현시키려고 했다. 외교의 달인 비스마르크가 “노골적인 팽창 노선은 위험하다”며 만류하자 그를 해임했다. 빌헬름 2세는 전쟁을 개의치 않았다. 프랑스가 점유하던 모로코에서 혁명의 조짐이 보이자 식민지를 넓힐 기회라며 프랑스를 향해 한판 승부를 자청했다. 러시아와 영국이 끼어들어 그 분쟁을 가까스로 뜯어말리자 다른 길을 찾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군사 지원을 약속하며 보스니아와 전쟁을 부추긴 것이다. 그 싸움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그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패하자 국민들은 공화국을 선언하고,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거기서 나치를 지지했다. 그가 유난히 호전적이었던 이유는, 평생 군복을 입고 살았던 탓이다. 왼팔이 부러진 채 태어난 그는 빳빳한 군복 속에 짧은 팔을 감췄다. 콤플렉스가 많다는 것은 통치자의 결격 사유다. 콤플렉스의 화신 빌헬름 2세가 1888년 오늘 황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