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9] 만지(滿持)의 태세
일본어에 ‘만오지스(満を持す)’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가득함을 유지하다’라는 뜻으로, 보통 ‘준비를 철저히 하여 기회를 기다리다’라는 뜻의 관용구로 사용된다. 한국어로는 만반(萬般)의 준비를 하다, 또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말의 유래는 한(漢)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58년 흉노의 준동이 심상치 않자 문제(文帝)는 유예(劉禮), 서여(徐厲), 주아부(周亞夫)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북방에 파견한다. 문제가 변경(邊境) 사정을 살피고 군을 위무하고자 주둔지를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유예가 파견된 패상(霈上), 서여가 파견된 극문(棘門)에서는 황제 일행이 군문 앞에 다다르자 수비병들이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고, 황제의 수레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진중을 내달렸다.
이윽고 황제의 선발대가 주아부가 파견된 세류(細柳)에 도착하자 그곳 병사들은 완전 무장한 채 활을 겨누고는 “장군의 명 외에 누구의 명도 따르지 않는 것이 이곳의 영(令)”이라며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섰다. 선발대가 발이 묶인 사이 본대가 도착하였으나, 수비병들은 요지부동이었고, 황제의 부절(符節)과 칙서가 정식으로 전해진 후에야 황제의 수레가 진중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때 세류의 병사들이 활시위를 끝까지 당긴 모습이 ‘만지(滿持)’, 즉 ‘가득함을 유지하다’는 표현의 유래이다. 아울러 이때의 일화에서 비롯되어 군대의 기강이 추상(秋霜)과 같이 엄한 경우를 두고 ‘세류영(營)’이라 일컫기도 한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핵실험 재개 동향은 한국이 직면한 안보 위협의 실체를 보여준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이 있듯 상대의 선의에 기대어 평화를 달성하려는 안이함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태롭게 만들기 십상이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 이상으로 예의(銳意) 경각심이 필요한 상황에 ‘만지의 태세’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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