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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1] 적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bindol 2022. 7. 16. 04:28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1] 적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입력 2022.07.15 03:00
 
 
12일 도쿄의 한 신사에서 열린 장례식후 아베 전 일본총리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시민들의 애도속에 떠나고 있다./로이터 뉴스1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급서한다. 아직 독일·일본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였다. 이튿날 일본의 영어 선전 매체인 ‘동맹통신’은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 총리의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방송한다. “우리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이 오늘날 미국을 전쟁에서 우세한 지위로 이끌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죽음에 대해 미국 국민들이 느낄 상실감을 이해하며, 깊은 공감(profound sympathy)을 표하는 바이다.”

막 총리에 취임한 스즈키는 에도시대에 출생한 ‘마지막 무인(武人)’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정치와 무관한 그가 78세의 고령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은 군부의 ‘성전(聖戰) 완수’ 움직임을 견제하고 종전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적국 지도자의 죽음 앞에 적개심을 잠시 내려놓은 채 고인의 리더십을 칭송하고 애도를 표한 스즈키의 담화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독일의 히틀러는 “이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자는 지은 죄에 상응하는 운명에 처해졌다”며 루스벨트의 죽음에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나치의 폭정을 피해 미국에 피신 중이던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은 독일 국민 대상 라디오 연설에서 스즈키의 조의 표명을 명예를 존중하는 기사도(gallantry)로 표현하면서, “독일이 이토록 반문명적인 비참한 상태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야말로 독일의 비극”이라며 독일인들이 나치 체제의 비인도성을 깨달을 것을 촉구했다.

 

며칠 전 일본의 아베 전 총리가 비극적인 사건으로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하는 한국 내의 반응은 다양한 듯하다. 보수 강경파로서의 이미지가 한국인들이 그의 죽음을 흔쾌히 애도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스스로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