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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엽기적인 ‘그분’

bindol 2022. 6. 22. 04:43

[선우정 칼럼] 엽기적인 ‘그분’

한국 국민이 북한에 살해됐는데
피해자를 대변할 한국 대통령이
북한 수령과 브로맨스 쇼 벌였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은 어땠을까

입력 2022.06.22 00:00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세월호 사고 현장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탄핵된 날이다. 많은 사람이 기괴하게 느꼈다. 보통 사람은 남의 비극에서 고마움을 찾지 않는다. 그 비극 때문에 이득을 얻었다고 해도 표현하지 않는다. 염치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의 심리엔 그것을 넘어서는 이상한 코드가 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진씨가 북한군에 살해됐을 때도 그랬다. “대단히 미안하다”는 김정은의 말이 담긴 북한 통지문을 받은 날이다.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야 정상이다. 대신 문 전 대통령은 보름 전 김정은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를 꺼냈다. 서훈 안보실장을 내세워 이 편지를 카메라 앞에서 읽도록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김정은이 보낸 답장 내용도 읽었다. “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국민의 비극 앞에서 가해자와 브로맨스 쇼를 벌인 것이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은 어땠을까. 문 전 대통령에겐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진씨의 유족이 17일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씨가 2020년 9월22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뒤,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싸웠다. 작년 국가인권위가 유족의 손을 들어줬고 정권 교체 후 "월북"이라고 단정했던 해경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가 사건을 직접 언급한 시점은 사건 발생 닷새가 지나서였다. 문 전 대통령은 “특별히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것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의 양해도 얻지 않았다. 무슨 자격으로 각별히 받아들였나.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 곧바로 직접 사과한 것”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란 해석도 달았다. 그러더니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이라면서 군사통신선 재가동을 북한에 요청했다.

나는 그가 이상했다. 사건 당시 남북한 정부는 소통이 가능했다. 현장에서도 군은 국제상선통신망을 이용해 북한과 통신했다. 통신망이 가동하지 않은 게 아니라 문 정부가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실종된 이씨가 북한에서 발견된 사실을 알고도 구하려 하지 않았고, 북한군이 현장에 사살을 명령한 사실을 알고도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통신 두절 탓에 국민을 못 구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곤 “이번 비극이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국민의 시체도 못 찾은 판국에 대통령이 나서서 대화와 협력, 반전의 기회를 간청한 경우는 들어본 일이 없다.

 
북한군에 의해 국민이 피살된 이틀 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루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안보실장에게 맡기고 디지털뉴딜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서 열린 실감 콘텐츠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타인의 불행에 무심한 사람이 있다. 탄핵이란 결과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가 고마워졌듯이 자신에게 유불리로 다가와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둔다. 이 사건 보고를 받은 뒤 이틀 동안 대통령은 유엔 화상회의에서 북한과의 종전 선언을 주장하고 군 장성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안보실장에게 맡기고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그냥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만행을 감추고 피살 공무원의 월북설부터 흘렸다. 이렇게 무심하던 그를 흥분시킨 건 북한에서 받은 통신문이다. 비극을 북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보름 전 낯간지러운 편지를 꺼내 대국민 낭독하고 김정은의 생명 존중을 찬양했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해경 수사 과정에서 심리 전문가 3명 중 1명만이 이씨가 ‘도박 중독’이라는 의견을 냈다. ‘정신적 공황 판단’을 한 전문가는 7명 중 1명이었다. 선박에서 함께 생활한 동료 10명 전원이 “월북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월북 정황이 있는 현장의 감청 정보를 해경이 접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표현한 의사는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수사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해경은 “이씨가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이씨의 빚까지 부풀렸다. 명백한 조작 수사다. 여당 정치인도 가담했다. 신동근 의원은 “월북을 감행하면 사살하기도 한다”고 했다. 양향자 의원은 “굳이 월북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도 우상호 의원은 “민생이 심각한데 이게 현안이냐”고 했고, 설훈 의원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엽기적인 존재는 북한이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과 해경, 정치인의 행태에서도 나는 오싹한 엽기성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가을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비참하게 죽은 대한민국 8급 공무원을 가차 없이 나라의 배신자로 몰았다. 많은 사람이 이런 국가 폭력을 심판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라고 대통령 윤석열을 뽑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