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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왕이 올 세번째 통화…中 “침공 연기 요청 가짜” 당혹

bindol 2022. 6. 25. 05:46

블링컨·왕이 올 세번째 통화…中 “침공 연기 요청 가짜” 당혹

중앙일보

입력 2022.03.06 14:06

업데이트 2022.03.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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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다정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당시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중·러가 공유했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5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전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협의했다고 양국 외교당국이 각각 발표했다. 블링컨 장관은 통화에서 중국에 러시아 제재 동참을 촉구했고, 왕이 국무위원은 당사자 해결 원칙을 내세워 중재자 역할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중 외교 수장의 통화는 지난 1월 27일, 2월 22일에 이어 올해 들어 세 번째다.

미 국무부 발표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왕 국무위원과 러시아의 ‘계획적이고, 근거 없으며,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대해 “세계는 어떤 나라가 자유·자결·주권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지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는 결집해 러시아가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의 침공을 거부하고 항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을 촉구하면서 유엔 총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한 중국의 결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왕 국무위원은 제재 동참에 반대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왕 국무위원은 “불길에 기름을 부어 정세를 격화시키는 행동에 중국은 모두 반대한다”고 우회적으로 제재에 반대했다.

왕 국무위원은 중재자 역할에도 신중한 태도를 비쳤다. 왕 국무위원은 “우크라이나 위기는 최종적으로 단지 대화와 담판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며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직접 담판을 격려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과 러시아가 평등하게 대화하는 것을 격려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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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지난 2월 22일 블링컨·왕이 통화 후 발표문에 담겼던 “중국은 계속해서 각 방과 접촉하겠다”는 발언은 사라졌다. 지난 1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왕 국무위원에게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해 전쟁 중단 하도록 요청했지만,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중국이 정전 중재 역할을 회피하는 데에는 올 하반기 차기 지도부 인사를 확정하는 중국 공산당 대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만일 중국이 중재 역할에 나섰다가 실패했을 경우 시진핑(習近平) 지도부 위상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을 우려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직접 담판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관망 입장을 취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이탈리아 로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장에서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中 “침공 연기 요청은 가짜뉴스” 반박 속 당혹감

왕 국무위원은 중국의 당혹함도 내비쳤다. “우크라이나 정세 발전이 오늘 지금 상태에 이른 것은 중국이 보기를 원했던 바가 아니다”라면서다. 지난달 4일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을 의식한 중국 외교 당국은 지금까지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러시아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거리 유지에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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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동조했는지 아니면 러시아에 속았는지 아닌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일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중국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올림픽 폐막 뒤로 연기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가면서다. 왕원빈(王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뉴욕타임스 보도는 순전히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연기 요청이 가짜 뉴스인지, 사전 인지 여부가 가짜 뉴스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베이징이 만일 모스크바의 계획을 사전에 통보받고 연기만을 요청했다면 중국은 러시아 동조자로 전락한다. 만일 러시아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고, 미국이 건넨 첩보를 무시했다면 중국은 정보 수집 및 전략적 판단 능력에 허점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모두 중국에 치명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결론지었다.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모호한 입장이 야기할 부정적 영향을 피해야 한다. 또, 서방과의 관계 악화를 최소화하고, 고립을 피하면서 동시에 내정불간섭·주권·영토보존을 강조한 기존 발언에 대한 신뢰성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일례로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25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러시아 지도자가 직면한 위기 상황에서 취한 ‘행동’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측 발표문에 빠진 시 주석의 발언은 주중국 러시아 대사관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뒤늦게 공개했으나 6일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됐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