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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방중 50주년' 침묵한 美…中은 "美, 우리 바꾸려 말아야"

bindol 2022. 6. 25. 05:45

'닉슨 방중 50주년' 침묵한 美…中은 "美, 우리 바꾸려 말아야"

중앙일보

입력 2022.02.21 15:38

업데이트 2022.02.2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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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2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 중남해(中南海)의 마오쩌둥 집무실인 국향서옥(菊香書屋)에서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왼쪽부터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 탕원성(唐聞生) 통역, 마오쩌둥(毛澤東) 중공 중앙위 주석,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 윈스턴 로드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SCMP 캡처]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공(중국공산당) 전 중앙위 주석의 역사적인 베이징 회담이 21일 50주년을 맞았다. 닉슨 방중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 후 20여년 간 적대 관계를 이어가던 미국과 중국이 당시 공동의 적인 소련에 대항해 손을 잡으면서 ‘미·중 데탕트’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이날 미·중 양국은 공동 기념식도 지도자간 축전 교환도 이뤄지지 못했다. 닉슨 방중 50주년을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는 중국과 대중 압박 정책을 바꾸지 않으려는 미국이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972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 중남해(中南海)의 마오쩌둥 집무실인 국향서옥(菊香書屋)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중공 중앙위 주석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은 냉랭했다. 주 베이징 미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신과 웨이보 어디에도 닉슨 전 대통령의 방중 50주년 관련 내용을 싣지 않았다. 미 국무부도 닉슨 방중 50주년을 언급하지 않았다. 21일 베이징 미국 대사관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대통령의 날’을 맞아 휴무를 공지했다.

미국의 무반응에 중국도 닉슨 방중 50주년 관련 보도를 절제하며 수위를 조절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 관영 신화사 등이 침묵을 지킨 가운데, 인민일보 산하의 환구시보가 지난 18일 자에 ‘닉슨 방중 50주년의 중·미 관계에 대한 계시’ 칼럼 세 편을 게재한 게 전부다. 당시 양시위(楊希雨)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연구원은  “정치가의 높이에 서서 시대 조류에 순응하고 현실적 모순을 초월해야 한다”, 리하이둥(李海東)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미국 정책 결정자는 ‘중미가 협력만 한다면 각종 커다란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는 닉슨 대중 외교 유산을 재검토하기 바란다”, 우신보(吳心伯)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원장은 “워싱턴은 대만 문제가 중국의 핵심 이익임을 분명히 깨닫고 이 중대한 우려를 원만히 처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길 기대한다”며 중국 측 희망 사항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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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50년전 오늘 저우언라이 총리가 마련한 환영 만찬에서 닉슨의 건배사를 반복 강조한다. 당시 닉슨은 “전 세계와 세력 균형을 보면, 중화인민공화국과 미국은 적이 될 이유가 없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미국이 평화로운 태평양과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협력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왕원빈(王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미국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지금 미중 관계가 문제에 직면한 근본 원인은 미국 일부 인사의 중국에 대한 인식에서 엄중한 잘못에 기인한다”며 “중국을 주요한 전략 경쟁 상대 심지어 가상적으로 여겨 전방위 봉쇄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의 발전은 중국인민이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만들려는 것이지 미국에 도전하거나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중국을 바꾸려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가 예고했던 공동 기념 활동에 대해선 “적시에 발표하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 내용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10일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기자회견에 앞서 “올해는 닉슨 전 대통령 방중 및 ‘상하이 코뮤니케’ 발표 50주년”이라며 “중·미 양측은 이른 시일에 일련의 기념 활동을 전개해 함께 역사를 회고하고 미래를 전망할 것이며 관련 상황은 중국은 적시에 발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중국의 대미(對美) 외교에 대해 베이징 외교가의 한 전문가는 “‘동양(중국)은 떠오르고, 서양(미국)은 쇠퇴한다’는 동승서강(東昇西降) 논리에 함몰된 중국 수뇌부의 관점이 고정되면서 서구를 중심으로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대중국 포위망 강화에 귀를 막고 있다”며 우려했다.

미국은 내부 추스르기가 먼저란 입장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1일 닉슨 방중 50주년을 맞아 중남해(中南海) 국향서옥(菊香書屋)의 닉슨·마오 회담에 배석했던 윈스턴 로드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인터뷰했다. 1980년대 주중 대사를 역임한 로드는 “국내적으로 더욱 억압적이고 해외에서 훨씬 더 공격적이 된” 중국 정부에 맞춰 미국 입장을 조정해야 한다며 “첫 번째 기둥은 미국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드 전 대사는 “미국의 경쟁력을 증진할 ‘하드 파워’와 민주주의 작동을 개선할 ‘소프트 파워’를 갖춰 강한 입장에서 중국을 상대할 수 있도록 국내 기반을 강화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