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倉庫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창고실즉지예절, 의식족즉지영욕.)
‘관자(管子)’의 맨 첫 편인 ‘목민(牧民)’에 나오는 말이다.
위 말은 인간생활의 기초가 되는 먹고 입는 것이 해결돼야 사람이 예의와 염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목민’은 ‘목민심서’의 지방관과는 달리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를 말한다.
‘관자’의 목민 편은 예(禮)·의(義)·염(廉)·치(恥)가 국가를 지탱하는 네 밧줄이라 했다.
통치자가 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물질적 기반 위에 인륜도덕을 수립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의 ‘화식열전’에서 ‘관자’의 위 말을 인용했다.
‘관자’와 ‘사기’는 공통으로 물질 기반 위에 사회윤리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관자’는 전국시대 제나라 명재상 관중(?~BC 645)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제나라 지역 관자학파가 핵심 부분을 저술하고,
그 뒤 여러 단계에 걸쳐 추가로 집성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조선 시대에도 ‘관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관자’는 국가 재정·군비를 강화하려는 실제 정치의 지침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정조는 세손 때 경희궁 주합루(宙合樓)에서 공부했다.
‘주합’은 ‘관자’의 편명(篇名)에서 따온 것으로, ‘우주(宙)와 합일(合)된다’는 뜻이다.
역대 왕들이 정치 원리를 ‘관자’에서 참조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허균과 허목, 성호 이익 등의 지식인도 ‘백성을 잘살게 해야 하고,
그래야만 염치를 안다’는 ‘관자’ 주장에 귀기울였다.
‘관자’에는 현재 우리 정치에 대입할 수 있는 발언이 많다.
‘사순(四順)’편에서는 “민심을 그 본성대로 펴나가게 하면 나라가 흥성하고,
민심을 거역하면 나라가 패망한다”고 하였다.
정치란 민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국민도 각성해야 할 점이 있다.
먹고 사는 게 넘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됐다.
하지만 정작 예절과 염치는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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