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탁월한 영수"…충성경쟁, 묻어버린 칭호도 부활시켰다
입력 2022.07.11 00:30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집권 중국공산당(중공)의 20차 전국대표대회(20대) 전초전이 지난달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신장 등 14개, 올해는 4월 말부터 지난달 30일까지 베이징 등 17개 성이 지방 당 대회를 열고 지도부 교체와 20대 대의원 선출을 마쳤다.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지방 제후들은 시진핑(習近平·69) 주석을 향해 충성 경쟁을 펼쳤다. 이들의 정치보고에 담긴 20대 핵심 키워드는 마오쩌둥 사후 사라진 ‘영수(領袖)’ 칭호의 부활이었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국가박물관에서 공산당원들이 당상징 앞에서 입당선서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달 16일 톈진 당 대회 개막식에서 리훙중(李鴻忠·66) 서기는 “시진핑 총서기는 영명하고 탁월한 영수”라며 모두 7차례 ‘영수’를 외쳤다. 차이치(蔡奇·67) 베이징 서기는 27일 “총서기의 지략, 선견지명과 영수의 풍모”를 말했다. 지난해 11월 류닝(劉寧·60) 광시 서기는 영수를 5차례 언급했다. 마오쩌둥과 화궈펑 이후 폐기됐던 ‘영수’ 칭호가 13개 성 정치보고에 총 36차례 등장했다. 20대에서 확정할 당장(黨章·당의 헌법) 개정안에 ‘시진핑 동지를 영수로 하는 당 중앙’을 넣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후들은 ‘영수’를 호명함으로서 충성을 증명하고 승진을 공개 구애했다. 덩샤오핑은 ‘영수’ 대신 자신과 마오, 장쩌민을 ‘핵심’으로 불렀다. 시 주석은 지난 2016년 18기 6중전회에서 이 표현을 거머쥐었다. 이듬해 19대 당장에 자신의 ‘핵심’ 지위를 기재했다.
지난 1일 중국 베이징의 국가박물관에 전시 중인 중국공산당 상징을 한 관람객이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수 호칭은 5년 전 ‘핵심’과 ‘시진핑 사상’ 기재 방식을 따르고 있다. 당시 2016~17년에는 14개 지방이 정치보고 제목에 ‘시진핑’을 명기했다. 이번에는 4개 지역 제목에 ‘영수’가 들어갔다. 시진핑의 정치적 고향인 저장의 위안자쥔(袁家軍) 서기는 ‘시진핑’ 이름 석 자를 총 58차례 호명했다. 반면 한정(韓正) 부총리가 대의원으로 선출된 하이난의 선샤오밍(瀋曉明) 서기는 ‘시진핑’을 18차례 언급하는 데 그쳤다. 시진핑 이름은 31개 지역에서 도합 994차례 들어갔다. 시진핑과 당 중앙 수호를 규정한 ‘양개유호(兩個維護)’는 모두 148차례 언급됐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공산당 정치 체제에서 정치보고는 중요하다. 사상통일의 상징이어서다. 당 이론가들은 정치보고를 “가장 중요한 경국대업(經國大業,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큰 문장)”으로 부른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정치보고는 전국대표대회가 선출한 차기 지도부가 향후 5년간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위임하는 문서”라며 “관례에 따르면 당 대회 직전 개최되는 7월 말 중앙당교의 장차관급 간부 연수반 수료식의 당 총서기 연설에 정치보고 초안이 담긴다”고 설명했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듯이’ 지방 정치보고를 통해 중공의 향후 지침을 미리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문건에는 사회·경제 정책도 담겼다. 지난달 폐막한 베이징·상하이·저장·지린·후베이 정치보고에 ‘제로 코로나’가 기재된 점도 주목된다. 검사·격리·봉쇄를 통한 제로 코로나 달성을 의미하는 ‘다이내믹 제로(動態淸零·동태청령)’란 용어는 총 36차례 등장했다. 이 용어는 지난해 문건에선 주로 ‘취업자 0명인 가정을 없애겠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올해는 제로 코로나 정책 의미로 ‘다이내믹 제로’가 총 23차례 등장했다. 중국의 ‘코로나 쇄국’은 가을 20대 정치보고에 ‘제로 코로나’ 지침을 어떻게 명기하느냐에 따라 더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도 비중 있게 다뤘다. 31개 지역 모두 총 185차례 언급했다. 공동부유 시범구로 선정된 저장은 총 34차례 공동부유를 말했다. 광시(15차례)·후베이(10차례)가 뒤를 이었다. 신장과 구이저우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차관급 이상인 지방 당 조직의 상무위원 물갈이도 큰 폭으로 이뤄졌다. 새로 선출된 지방 상무위원 392명 중 70년대생(70허우·後)은 68명(17.34%)을 차지했다. 한국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 중 70~80년대생 비율인 14.62%보다 많다. 특히 지방 상무위원 중 50년대생은 2.8%인 11명에 불과했다. 40~50년생 24.11%로 고령화가 심한 한국과 대조를 이뤘다.
중국의 권력 승계를 연구해온 이재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진핑 키드’로 불리는 ‘70허우’ 약진에 대해 “새로운 세대의 유입을 통해 당이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된 한국 정치와 차이가 있는 부분이지만, 중공은 오히려 새로운 세대의 발탁이 독재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며 “과거 마오쩌둥은 화궈펑 등 지방의 젊은 공산당 간부를 중앙 당조직으로 발탁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고, 이들이 문혁 수혜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20대를 앞둔 중국의 정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달 말 20대 정치보고 초안 검토가 시작된다. 이어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퇴직 원로와 현직이 만나 인사안, 정치보고, 당장 수정안 등 모든 현안을 놓고 최종 협의에 나선다. 안치영 원장은 “사실상의 종신제를 노리는 시진핑 세력을 향해 원로 견제 세력이 경제·외교·건강 등 변수를 내세워 ‘조건부 3연임’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74세 고령의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지난달 23일 장쑤에서 대의원에 당선된 점도 주목된다. 19대 중앙위원이 아니면서도 서열 8위 의전을 받는 왕 부주석이 내년 3월 국가부주석에 재선출될 경우 오는 2027년 시 주석의 4연임을 위한 사전 포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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