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마음도 샤워하는 시간이 필요해

bindol 2022. 7. 12. 04:59

마음도 샤워하는 시간이 필요해

중앙일보

입력 2022.07.12 00:30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햇살은 뜨겁고 바람 한 점 없다. 서둘러 선실의 갈색 좌복들을 모두 담벼락에 내어 말린다. 좌선하는 방석은 두텁고 까슬까슬하니 풀 먹인 듯해야 좋다.

감물들인 옷을 갈옷이라 하는데, 제주에서는 여름이면 이 옷을 많이 입는다. 옷감이 몸에 달라붙지도 않고 땀 냄새도 없으며 항균효과는 물론 전자파까지 막아준단다. 서문시장 오래된 갈옷집 딸이 몇 년 전 참선수행을 한 인연으로 출가를 했는데, 미안한 마음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그 집을 찾았다. 평생을 갈옷 만들어온 노모와 디자인 전공으로 호주 유학을 다녀온 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디에서든 참선에 필요한 도구들이 보이면 기쁘다. 마침 알맞은 크기의 참선 방석이 있어 오십 개나 구입했다.

진화된 인류가 산다는 21세기
무한경쟁에 갇혀 위기 조장해
각자 희망의 불씨 찾는 노력 필요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참선수행을 하러 제주까지 오셨다. 마음 치유를 위한 참선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면 언제나 설렌다. 그분들에게도 나에게도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이자 만남이기 때문이다. 범부들은 밖으로 향하는 시비의 마음은 잘 드러내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을 내는 데는 늘 인색하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루 한번 샤워하는 시간만큼만 마음 샤워를 위해 좌복에 앉는다면 맑고 지혜롭게 살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그 방법도 알기 어렵다. 일상의 익숙함을 버리고 8일 동안의 묵언 참선수행을 위해 찾아온 이들이 반갑고 고마운 이유이다. 이분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한다. ‘수행을 하니 이런 후한 대접을 받는구나!’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한다.

사람들은 가문을 따지기 좋아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생물학적 DNA에 의해 기본적 건강상태가 영향받는다는 것을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알게 된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행동이나 말투·인품이 부모를 닮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님들 세계도 비슷하다. 어른스님들을 만나 첫 인사를 할 때면 자신의 스승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DNA를 물려받지 않았지만 스님들도 스승을 닮는다. ‘인품 DNA’라는 것이 있는 듯싶다. 어떤 스님들은 말투와 행동이 그의 스승과 흡사해 내심 놀란 적도 있다. 이렇듯 성장하면서 부모보다 스승의 영향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려면 훌륭한 종교나 직접적 스승을 만나야 한다. 깨달음의 지견이 열린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은 없다.

이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경주 남산의 돌부처님들을 홀로 참배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내 모습을 기특하게 지켜보던 사십대 중반의 선배 스님이 말을 건네 왔다.

“스님의 노스님은 어느 분입니까?”

“백양사 조실 서옹 큰스님입니다.”

“그 어른스님은 도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열반하기 전에 꼭 삼년만 모셔보세요.”

당부를 들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 부름을 받아 딱 삼년 동안 노스님을 모셨다. 서옹 스님(1912~2003)은 격동의 20세기를 온전히 사셨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이시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또 묻다 보면 결국 죽음이라는 한계상황과 만난다. 이런 상황에서 생사문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하다보면 절대 이율배반과 절대 긴장이 나온다. 이 절대 긴장이 내가 만든 ‘나’라는 껍질을 벗고 진실한 자기를 만나게 한다. 이것을 서옹 스님은 ‘비약’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향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 비약과 향상을 통해 ‘참된 성품’을 회복할 수 있으며, 가장 완전하고 행복한 삶이 열린다.

장성 백양사에서 해남 미황사로, 이제는 제주의 원명선원까지 장소를 옮겨가며 쉬지 않고 참선 지도를 하고 있는 것은 서옹 스님의 간곡한 당부 때문이다. 25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스님은 근현대 서양철학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조와 욕망이 과학과 만나 급속한 환경파괴와 핵전쟁의 위협을 불러 인류가 최대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아울러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본연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참된 성품’을 회복하는 참사람 운동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하셨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진화된 인류가 살고 있다는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중이다. 행복의 조건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그런데도 국가와 개인들은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온갖 위기를 조장한다. 인류의 미래는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각자 처한 곳에서 주체적으로 지속가능한 희망의 작은 불씨를 찾는 노력(수처작주 입처개진)이 필요하다.

오늘도 마음공부를 하고자 찾아온 귀한 인연들과 함께 좌복에 앉아, 자기 안의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성품 찾는 길을 함께 걷는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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