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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 혹시 이게 다 삼국지 탓일까

bindol 2022. 7. 14. 03:34

[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 혹시 이게 다 삼국지 탓일까

입력 2022.07.14 03:00
 
 
/일러스트=이철원

마니아라고 할 수준은 못 되지만, 삼국지를 여러 번 읽기는 했다. 어렸을 때는 제갈량에 몰입했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소년이어서 무장들에게 빠져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낼 무렵에는 조조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믿었다. 내게도 세상을 불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다. 조조의 시 단가행(短歌行)은 지금도 좋아한다.

유비의 매력을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사람에게 지략이나 야망과는 다른, 도량이라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다. 책으로는 습득하기 어려운 앎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웠다. 나보다 그릇이 훨씬 큰 인사들을 만나 그 앞에서 어리둥절해 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면서 비로소 깨쳤다.

제갈량이나 조조, 유비가 멀게 느껴지니 주유, 진궁, 예형 같은 인물들의 비극이 눈에 들어왔다. 음, 이것도 적고 나니 많이 멋쩍네. 이들도 일반인 수준은 까마득히 뛰어넘은 기재(奇才)들인데. 이제는 내가 삼국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냥 ‘군졸 3′이나 ‘백성 4′였을 거라고 여긴다. 숨죽인 채 그저 전쟁 안 나길 빌며 벌벌 떠는.

삼국지에 대한 애정이 식고 나서야 군웅(群雄)들의 인성이나 계략, 업적보다는 그네들이 추구한 신념이나 가치를 살피게 됐다. 다시 말해 다른 시대, 다른 분야 위인들을 보는 눈으로 삼국지의 영웅호걸들을 바라보게 됐다. 그러면 뭐가 보이느냐. 근대 사회가 폐기해 버린 목표들이 보인다. 황실을 부흥한다든가, 주군의 아들을 구한다든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은 기껏 권력욕의 다른 표현 아닌가. 충(忠)이나 의(義) 같은 개념이 지금 가리키는 바는 무엇일까. 패거리주의, 정실주의, 보스에 대한 복종 아닐까. 영국 작가 애덤 니컬슨은 일리아스의 그리스 영웅들이 현대 미국의 갱 단원처럼 말하고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삼국지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얘기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전쟁 영웅들은 복수와 평판을 중시했다. 지금도 폭력조직들은 그런 식으로 사고한다.

근대 시민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삼국지를 이중으로 소비한다. 충, 의, 천하 같은 단어를 비유로 받아들이고, 그런 현대적 해석을 인간관계와 처신에 적용한다. 유비가 조운 앞에서 제 아들을 집어던졌듯, 타인의 마음을 사려면 화끈하게 내 걸 버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식으로. 삼국지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를 칼럼에 써먹는 일과 비슷하다.

 

그러나 삼국지를 읽는 동안에는 그냥 전근대인이 되어 버린다. 삼권분립이나 일사부재리 원칙이 사람 마음을 뜨겁게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 개인이 수십만 대군 앞에 당당히 서고, 흉기를 들고 일대일로 적과 무술을 겨루며, 흠모하는 상사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는 모습에 열광한다. 다들 마음 깊은 곳은 고대인이다.

한데 그런 분리가 그리 깔끔하게 이뤄지지는 않는 것 같다. 다른 이의 세계관을 탐닉하다 보면 결국 거기에 젖는다. 삼국지 시대의 눈으로 주변을 보게 된다. 소설가 김훈이 “나와 내 또래 남자들은 삼국지를 너무 많이 읽어서 이 모양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고 썼을 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다른 선진국 시민들은 그 나라 정치인들의 주장과 움직임을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나는 가끔 궁금하다. 간혹 한국 정치 기사들은 내 눈에 심히 괴상해 보인다. 친노-비노 대립을 지나 친이와 친박이 대결했고, 그 다음에는 친박과 비박, 친문과 비문, 이제는 친윤-비윤, 친문-친명이 서로 싸운다고 한다.

대체 다들 무슨 가치를 두고 다투는 건가? 아, 공천권? 그야말로 군졸 3 또는 백성 4로서 하품 나오는 주제다. 그런 거 말고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노선에 있어서 친윤-비윤, 친문-친명은 의견들이 어떻게 다른가. 정책에 대한 태도들을 금방 바꾸는 풍경으로 추정컨대, 혹시 이 문제에는 애당초 큰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한국 언론이 정치 기사를 쓰는 방식이 문제인가, 한국 정치인이 문제인가. 둘 다 문제인가. 혹시 이게 다 삼국지 탓일까? 아니면 협동이 중요한 벼농사를 오래 지어온 탓에 가치보다 관계를 신경 쓰는 유전자가 우리 몸에 삽입되기라도 한 걸까.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유산일까. 이 패거리주의를, 전근대를 언제쯤 극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