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원화 채굴’
10년 전 일본 소설을 영화로 만든 화차(火車). 이야기의 발단은 ‘빚’이다. 부모에게 약혼녀를 소개하러 가던 길에 약혼녀가 사라진다. 수소문 끝에 약혼녀의 인생 전체가 가짜인 게 드러난다. 아버지가 빚을 진 채 사라지고 딸이 빚을 대신 떠안았다. 사채업자의 매춘 강요에 시달리던 그녀는 빚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 신분을 도용해 가짜 인생을 살았다. 화차는 지옥행 수레를 뜻하는 불교 용어인데, 일본에선 ‘빚에 시달리는 괴로운 현실’이란 의미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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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시 재정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빚의 무서움을 회상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7살 때 고리대금업자가 고리채 신고를 했다고 엄마 머리채를 잡고 고향 길거리를 끌고 다니며 구타했다.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 알았다.”
▶투자업계에선 빚을 내 수익률을 더 높이는 레버리지 투자를 당연시한다. 하지만 투자 고수 워런 버핏은 빚을 극도로 싫어한다. 버핏은 청년들에게 “돈이 생기면 카드 빚부터 갚으라”고 충고한다. 그는 “18% 수익(카드 대출 이자율)은 나도 못 낸다. ‘빚 갚기’는 그 어떤 투자보다 훨씬 나은 투자”라고 했다. 버핏은 자서전에서 사업 초창기 보험사 인수를 제1 성공 비결로 꼽았다. 보험금 지급 요인이 생길 때까지 보험사가 이자 한 푼 안 내고 활용할 수 있는 고객 보험료가 무이자 투자 재원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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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돈을 빌리는 것은 자유를 파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돈은 없고 소비 욕구는 큰 청년들은 빚 유혹에 취약하다. 2002년 카드사들이 길거리 모집으로 신용카드 1억장을 발급하면서 신용불량자 400만명을 낳는 카드 대란이 벌어졌다. 20년 만에 그 악몽이 재현될 참이다. ‘미친 집값’에 놀란 청년들이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 투자)로 집·주식·코인에 투자했다가 금리 급등 탓에 파산 위기에 놓였다. 대출금리가 3%포인트 더 오르면 120만명이 소득 90%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한다. 그 빚이 336조원에 이른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원화 채굴’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는 것을 의미한다. 땀 흘려 번 월급 300만원이 ‘예금 12억원’ ‘10억원짜리 상가’와 맞먹는 수익률이라는 각성이 담긴 신조어이다. 2000년 전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근검절약만이 부자가 되는 바른 길”이라고 했다. 근검절약과 저축이 자산 형성의 첫걸음인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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