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공매도가 미우신가요?
“공매도 시작해. 하한가 찍을 때까지 멈추지 말고!”
최근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 외국계 금융회사의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은 이렇게 지시했다. 공매도로 주가를 하락시켜 경쟁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장면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공매도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악당들이 애용하는 수법이라면 뻔하지 않은가.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다시 사서 갚는 거래 기법이다. 주식을 갚는 시점에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이익이다. 이렇다 보니 주가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공매도를 악(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공매도는 주요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글로벌 주가지수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는 얼마 전 “한국 증시는 공매도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 뉴욕 증시는 공매도를 금지한 적이 없다.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오스트리아·대만·말레이시아 등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공매도를 일시 금지했지만 지금은 다 풀었다. 현재 공매도에 제한을 두고 있는 주요국 증시는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뿐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350개 종목만 공매도가 허용된 상태다.
하지만 실제로 공매도와 주가 하락은 관련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거래소가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매도와 코스피지수 간 상관관계는 0.19~0.44에 그쳤다. 상관관계는 0에 가까울수록 관련도가 낮고, 1에 가까울수록 높다. 0.19라면 아무 관련이 없다고 봐도 될 만한 숫자다.
올 들어 세계 증시는 지난 2월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마비, 중국의 경기 둔화, 인플레이션에 맞선 각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상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증시는 주요국 증시보다 낙폭이 컸다. 외국인 자금의 유출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상반기 무역 적자가 사상 최대이고, 6%대 물가 상승률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매도를 금지했다면 달랐을까? 오히려 글로벌 금융 관행에 역행하는 공매도 금지 조치가 외국인 자금의 엑소더스(탈출)를 가속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팔겠다고 하는 ‘무차입 공매도’ 같은 불법행위는 제재하고 추방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투자 기법을 한국에서만 금지한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높다. 투자 손실을 무조건 공매도 탓으로 돌리고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은 정부 책임”이라는 목소리만 커지면 한국 증시가 글로벌 수준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일은 먼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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