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산책

[수학 산책] 완벽한 모양의 도형 그려서 수학의 아름다움 보여주려 했어요

bindol 2022. 7. 20. 03:49

 

[수학 산책] 완벽한 모양의 도형 그려서 수학의 아름다움 보여주려 했어요

입력 : 2022.07.14 03:30

작도(作圖)

바티칸 궁전에는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이자 건축가인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인데요. 이 그림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등장해요.


그림 속에서 유클리드는 '작도(作圖)'를 하고 있습니다. 작도란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 선이나 도형을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요. 라파엘로는 왜 유클리드가 작도하는 모습을 그렸을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작도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고 믿었어요. 예컨대 현실에서 반지름의 길이가 모두 같은 완벽한 상태의 원 혹은 완벽한 직선을 그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속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그린 원은 사실 원의 정의인 '완벽하게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원과 가까운 것을 원이라고 생각하고 부르는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인간이 이상적인 '도형(圖形)'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이상적인 도형의 모습이 구현된 '완벽하고 변하지 않는 비(非)물질적인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를 '이데아(Idea) 세상'이라고 정의했죠.

그리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고, 자로 직선을 그리는 것을 이데아 세상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도형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봤어요.

플라톤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언가에 대해 정의한 뒤 그것을 꼼꼼하게 따지며 실제 존재하는지 증명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정삼각형의 정의는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이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이 정의를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정의에서 사용된 표현 그대로가 현실에서 실제 존재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작도에 집중했어요. 정삼각형을 작도해 그려냄으로써 이것이 말뿐 아니라 실제 존재할 수 있는 도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거지요.

유클리드는 도형과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인 기하학의 체계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아요. 그런 유클리드가 작도를 하는 모습은 이상적인 도형에 대한 인류의 열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유클리드는 자신의 수학서 '원론(Elements)'에서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 정팔각형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정칠각형'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정칠각형의 정의는 일곱 개의 변이 같은 칠각형인데, 이 도형은 작도할 수 없어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유클리드는 정칠각형을 그의 책에서 뺀 거예요.

이처럼 당시 그리스인들은 이데아 속에 존재하는 완벽한 모양의 도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도형을 작도함으로써 수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최영기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