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라는 외래어는 chord와 code로 구분된다. 코드(chord)는 화음을 뜻하는 음악 용어다. 코드(code)는 부호를 뜻하는 통신 용어다. 이 코드(code)와 구분하기 위한 코돈(codon)은 유전생물학 용어다. 나 어릴 적 국어나 영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던 단어다. 생물 시간에도 배우지 않았던 코돈이다. 생명의 센트럴 도그마가 발표된 1950년대 전후로 과학자들이 만들어 쓰긴 했어도 그들만이 아는 전문 학술용어였다. 그러다가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1996년에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코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영어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는 일반용어가 되었다.
영어사전에는 간단하게 나와 있다. codon: 유전 정보의 최소 단위. 국어사전엔 보다 자세하게 나와 있다. 코돈: 생명 전령(傳令) RNA상의 유전 암호의 기본 단위. 이제 사전에 나온 일반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코돈이라는 낱말은 여전히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나 약간의 관심과 흥미를 가지며 알아보면 크게 어렵진 않다. 알고 나면 생명현상에 관해 눈이 조금 떠진다. 바쁜데 쓸데없는 거 알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알아서 나쁠 건 없다. 노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처럼 쓸데없음의 쓸모있음이다.
코돈은 국어사전에 나온 것처럼 유전 암호가 아니다. 생물학자들의 집요한 연구로 유전 암호가 풀렸으니 이젠 유전 부호라고 해야 마땅하다. 무엇이 코돈을 이루며 코돈이 뭘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코돈은 t-RNA에 있는 유전정보 부호다.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우라실(U). 딱 4개 염기의 서열로 이루어져 있다. 4개를 재료로 세 개씩 한 단위를 이루면 4×4×4=64개 조합이 된다. 이 조합들 한 개 한 개가 코돈이다. 64개 코돈이 유전 부호로 작용하여 아미노산을 만든다. 가령 글루타민이라는 아미노산은 CAA CAG라는 두 개의 코돈이, 알라닌이라는 아미노산은 GCU GCC GCA GCG라는 네 개의 코돈이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이 20여 종이다. 고작 20여 종 아미노산들 밖에 안 되지만 위아래로 이어져 수많은 형태와 성질을 가진 단백질이 합성된다. 그러한 단백질들의 총체적 집합이 바로 생명체다. 결국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64개 코돈이 헤치고 모여서 결정된다. 인간이라면 머리와 피부색은 어떻고 키와 얼굴은 어떤지 그 모든 생명 현상이 64개 밖에 안 되는 코돈의 조화(調和)로운 조화(造化)다.
주역에서도 64개다. 주역은 양(陽)인 ―와 음(陰)인 - -로 되어 있다. 이 둘을 3층으로 쌓으면 2×2×2=8괘다. 이 8괘를 위아래 2단으로 쌓으면 8×8=64괘다. 주역(周易)은 단순한 점술서가 아니다. 64개로 두루(周) 바뀌는(易) 세상 흐름의 이치를 타이르는 묵직한 철학서다. 64개 상황이 두루 바뀌는 세상, 64개 코돈으로 두루 생기는 생명! 64개라는 공통점 안에 뭔가 숨겨진 끈이 있을 법하다. 세상이 64개 상태로 이리저리 흐르며, 생명체가 64개 코돈으로 이리저리 이루어진다. 둘 다 64개가 되는 게 우연일까? 과거 나는 64개 코돈이 어찌 이어져 태어났으며, 현재 나는 64궤 중 어느 상태에 놓여 있는 걸까? 내일 어떤 코돈을 남길까? 어떤 상태에 놓일까? 64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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