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나라의 불공대천 원수다
(日本於我國, 不共戴天讐也·일본어아국, 불공대천수야)
일본은 우리나라에 있어 불공대천 원수이다. 강화를 허락한 것은 사실 무책에서 나왔다. 두봉 학사가 선위사의 명을 받들고 정월 11일 동래에 도착하여 저들 사신이 오기를 기다린 지 이제 이미 3개월이 되었지만, 저들 사신은 바로 대마도의 왜인으로 임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다.
日本於我國, 不共戴天讐也. 許以和好, 實出無策. 斗峯學士承宣慰之命, 正月十一日, 來到東萊, 以待彼使之來者, 今已三箇月, 而彼使乃馬島倭假衡者也.(일본어아국, 불공대천수야. 허이화호, 실출무책, 두봉학사승선위지명, 정월십일일, 내도동래, 이대피사지래자, 금이삼개월, 이피사내마도왜가형자야.)
위 문장은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1571~1637)이 1609년 지은 시 ‘次斗峯絶句韻’(차두봉절구운·두봉의 절구를 차운하여)의 머리글로, 그의 문집 ‘東岳集’(동악집)에 실린 ‘萊山錄’(내산록) 권8에 들어있다. ‘萊山錄’은 이안눌이 동래부사 재임 때 엮었다. 이안눌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1608년(선조 41) 동래부사로 부임했다. 이안눌은 선위사로 동래에 온 두봉 이지완(李志完·1575~1617)과 시를 주고받으며, 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밖에 안 된 시점에 다시 일본과 화친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전쟁 책임 인정과 충분한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無策’하게 다시 허교하는 것에 분개했다. 일본은 사신을 보내기로 약속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안 보내는 등 우리를 기만한다고 위 문장의 이어지는 글에서 밝혔다.
필자의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안눌이 임란 때 동래성 전투에서 죽은 사람의 유족들이 같은 날 제사지내며 통곡하는 것을 읊은 시도 소개 좀 하시라” 했다. “‘四月十五日(사월십오일)’이라는 시는 너무 많이 인용됐고 나도 다른 글에서 소개한 바 있어 좀 그렇다”고 답했다. 고민 끝에 위 문장을 소개한다.
시 ‘四月十五日’의 사연은 이렇다. 4월 15일만 되면 집집이 곡을 해 이안눌이 아전에게 연유를 물으니 “동래성 전투가 일어난 날 같이 죽어 그렇다”고 답했다. 아전은 “그래도 곡할 사람이 있는 집은 다행이고 곡할 사람이 없는 집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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