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2] 빈 방에 하늘 들이기
텅 빈 방에 혼자 있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구도 사람도 사라지고 없는 어둡고 조용한 방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기능과 관계를 상실한 공간은 지속되기 어렵다. ‘비어 있는 곳’은 사라질 운명이거나 다른 기능이 부여되길 기다리는 갈림길에 놓인 상태다.
이 사진은 광주광역시와 함평군 경계 지역에 들어선 미래산업공단 자리에서 찍혔다. 공단이 들어서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농민들이 살아온 땅에 찾아온 변화는 순식간에 몰아쳤다. 오래된 집들이 있었던 마을 전체가 비워지고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공장 지대가 조성되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현택 작가는 ‘빈방’ 연작을 통해서 도시 정비 사업으로 급격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지루할 만큼 그냥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집들이 하루가 다르게 스러져 가는 시간을 함께했다. 파란 하늘에 선명한 구름은 마치 영사기로 비추어 보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텃밭과 마을회관, 그 앞에 쓰러진 커다란 감나무는 뒤집어 세운 사진 속에서 아직은 살아있음을 외친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연민, 묵시록 같은 풍경에 대한 레퀴엠은 오늘도 생생하게 그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며 기린다.
철거가 예정된 집은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쉽게 폐허가 된다. 환한 낮에도 집 안은 침침하다. 작가는 빈방으로 들어오는 빛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암막 커튼을 설치하고, 어두운 방을 커다란 카메라처럼 만들기 위해 커튼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그 구멍은 빛을 수렴해서 방 안 반대편 벽에 바깥 풍경을 역상(逆像)으로 드리웠다. 아주 천천히 빛을 축적하는 시간을 거치면 사진 속에서 다시 환한 방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눈이 망막에 상을 맺는 원리와 같고, 이를 본뜬 카메라가 이미지를 만드는 원리이기도 하다. 사람의 안구와 카메라가 기계적으로 보면 모두 작은 구멍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어두운 방인 것이다. 수렴된 빛이 없다면, 그리하여 외부와 연결되는 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람도, 카메라도, 사진 속 텅 빈 방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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