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5] 전 부치기 좋아하는 사람?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기본 차림에 대한 제안을 새로이 한 것인데, 핵심은 ‘간소화’였다. “너무 많은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등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무언가를 강제하는 말은 하나도 없다. 특히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大禮必簡)’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인용해서 유교적 수칙이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말은 귀에 쏙 들어왔다. 이 내용을 전하는 기사의 타이틀은 ‘추석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로 뽑혔다. ‘명절에 전 부치기’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
이선민 작가는 ‘여자의 집 II’ 연작에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여성의 관점에서 명절이나 제사에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였다. 지글지글 기름에 음식이 익는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휠씬 많은 음식을 해야 하니 부엌에서만 조리를 할 수 없다. 하루 종일 허리도 못 펼 것이 예고된 ‘전’ 담당이 거실에 판을 벌이고 자리를 잡는다. 하나둘씩 가족들이 모이면 점점 집 안은 더 북적이게 될 것이다. 늦은 밤까지 누군가는 일을 계속하고 누군가는 놀 판을 벌이고 누군가는 지루하게 서성일 시간이 다가온다.
사진 속에 남성은 단 한 명, 저 멀리 방 안에 앉아 있다. 여러 명의 여성들이 제사를 앞두고 낮 시간에 모여서 먼저 음식 장만을 하고 있다. 작가는 프레임 안에 거실을 중앙에 두고, 안방과 주방이 모두 보이도록 카메라의 위치를 잡아서 이 집안의 주요 연례 행사를 떠받치고 있는 안주인의 노동 현장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과 펼쳐진 조리 도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희생을 강요받는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질문이었다. 핵가족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답을 찾는 것은 성균관만의 몫은 아니다.
갓 구워 따뜻한 전은 꿀맛이다. 조상님들 먼저 드셔야 하니 너무 많이 먹지 말라는 핀잔이 따라오면 더 맛나다. “차례의 의미는 조상을 기리면서 후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조언은 이제 우리에게 각자의 답을 찾아보도록 권하고 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또 전 부치는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까.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가족의 이름으로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고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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