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다시 북적대는 명동
코로나로 관광객이 끊기며 ‘생업 파괴의 고요’가 감돌던 서울 명동이었다. 그 명동에 드릴과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28일 낮, 명동길은 병가를 마치고 출근을 준비하는 직장인 같았다. 공실 점포가 몇 곳 보였지만, 리모델링 공사가 요란한 점포도 여럿이었다. “이제 조금 살아난 거예요. 매출은 한창 때 비하면 한 20%? 아직 멀었어요.” 닭꼬치 노점 주인은 아직은 심드렁했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서울시 통역안내원 말은 이랬다. “오늘이 제일 많고요, 내일은 더 많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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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객이 온다손 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도호텔-조선호텔-명동에 이르는 거리가 거지들의 전시장이자, 구걸 경연장이 됐다…' 1960년대 6월 일간지 내용이다. 그래도 6개월 후 장면(張勉) 총리는 1961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그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만명 수준이었다.
▶1990년대까지 명동을 가장 많이 찾은 외국인은 일본인이었다. 명동 관광객 중 80% 내외였다고 한다. 1997년 중국 정부가 단계적 해외여행 자유화를 시행하며 ‘유커(遊客) 시대’가 왔다. 중국인은 관광도 ‘인해전술’로 했다. 최고치를 찍은 2016년에는 807만명이 입국했다. 부산, 인천, 광주 시민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유커는 많은 걸 바꿨다. 명동 대표 음식이 교자, 칼국수에서 ‘닭꼬치’로 바뀌었고, 명동에서 임차료가 가장 비싼 매장은 화장품 가게였다. 사드 갈등으로 큰 폭으로 줄었지만 2019년에는 600만명까지 회복하다 코로나로 발길이 끊겼다.
▶요즘 명동 관광객은 국적과 인종이 다양해졌다. 통역안내원은 “체감상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인이 가장 많고, 유럽, 미국인도 많다. 중국인은 20%쯤인 것 같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미국인 부부는 22년 만의 재방문이었다. “노스탤지어(향수)여행이다. 전에 묵었던 사보이호텔을 찾다가 깜짝 놀랐다. 같은 곳인가 싶더라. 달러 강세(strong dollar)라 한국이 마치 30%, 40% 세일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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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친구가 한국 남자와 전통 혼례를 올릴 예정이라 2주 일정으로 왔다. 서울의 중심이라 명동에 호텔을 잡았다.”(독일) “동생이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명동 카페 커피랑 음식이 맛있다.”(아일랜드) “중국, 일본은 코로나 관련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 한국에만 2주 있을 예정이다. K드라마 팬이라 더 좋다.”(독일) 한국인이 글로벌해지니 관광객도 더 다양해졌다.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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