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의 비밀

[漢字의 비밀] 순방(巡訪)

bindol 2022. 10. 1. 07:57

[漢字의 비밀] 순방(巡訪)

중앙선데이

입력 2022.10.01 00:22

한자의 비밀

대통령의 해외 순방(巡訪)이 큰 화제가 되었다. 순방(巡訪)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나 도시 따위를 차례로 돌아가며 방문함’을 의미한다. 『우리말샘』 사전의 표제항으로 올라간 해외 순방(海外 巡訪), 순방국(巡訪國)의 예문이 보여 주듯이 요즈음 순방은 대통령의 해외방문과 연관되어 주로 사용되는 추세이다.

순방(巡訪)의 ‘순(巡)’은 ‘쉬엄쉬엄 갈’ 착(辵)과 ‘시내’ 천(川)의 결합으로, 강의 물길(川)을 따라 가는(辵) 것을 말한다. 방(訪)은 말씀 ‘언(言)’과 사방 ‘방(方)’의 결합으로, 사방(方)으로 찾아가 묻고(言) 답을 찾음을 말한다. 한자 어원으로 보자면 순방은 의견을 묻고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두루 다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옛날 중국에서 천자가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을 순수(巡狩)라고 하였다. 『맹자』 ‘양혜왕’ 하편 4장 5절에 ‘천자적제후왈순수(天子適諸侯曰巡狩)’라는 대목이 나온다. ‘천자가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을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고 한다’로 풀이된다. 맹자는 천자의 순수는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순수의 수(狩)는 개 견(犬)에 지킬 수(守)가 결합된 한자이다. 수(狩)는 사냥개를 동원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짐승을 잡는 ‘사냥’을 뜻한다. 수(狩)가 포함된 순수는 왕이 사냥을 하듯이 통치권 강화를 위해 나라 안을 두루 다니는 정벌 행위로 볼 수 있다.

순수에 함의된 ‘사냥’과 ‘정벌’을 잘 구현한 역사 속 인물이 중국의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다섯 차례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순수했지만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기보다 권세를 과시하는 것에 급급해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순행(巡幸)도 임금의 거동(擧動)을 뜻한다. 왕이 궁궐 밖으로 가는 것을 행행(行幸), 선능으로 행차하는 것을 능행(陵幸), 온천에 가는 것을 온행(溫幸) 등으로 분화되어 사용되었다.

과거 왕의 순수와 오늘날 대통령의 순방의 기본적 차이는 말(言)에 있다. 예전 순수는 감시하고 사찰하여 왕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늘날 국가 지도자의 해외 순방은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대방과 의견을 나누고 답을 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순방에서는 국가 지도자의 말의 내용과 구사하는 어휘, 말하는 태도 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