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6667]명가 宗婦 잔치

bindol 2022. 10. 3. 05:58
[이규태 코너][6667]명가 宗婦 잔치 발행일 : 2005.10.28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이름을 떨친 명인 명가의 가풍을 지탱해온 종부(宗婦)들을 모시고 기리는, 이전에 없던 잔치가 내일 전통의 고을 전주에서 벌어진다. 이순신 권율 등 명장, 유성룡 등 명신, 김종직 김인후 김집 등 선현, 유형원 홍대용 등 실학자, 기건 등 청백리 겸 전라감사, 김구 박은식 이시영 등 임정요인, 이준 등 순국 열사, 유인석 등 의병장,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의사 40명의 명인 명가 종부들을 모시고 가풍과 가격(家格)을 계승 지탱하는 데 대한 애환을 서로 나누고 남원 춘향이와 장수 논개와의 유명(幽明) 간의 만남을 한다.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이나 인격 형성의 요람은 가문(家門)이었고 그 가문의 가풍은 무형문화재라 해도 대과가 없다. 이 문화재를 지탱·계승해 내린 것이 그 가문의 종부이고 보면 이 종부 잔치는 망각되어진 한 문화재의 발굴이랄 수 있다. 종부를 ‘치마 선비’, ‘치마 양반’이라 일컬은 것도 바로 종부에게 정신적 뼈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치마 선비’는 금권(金權)에 비굴하지 않음을 본으로 하여 근검하고 인자해야 하는 가풍에 구속받았으며 그 가격(家格)이 맞아야 혼인도 했다. 이를테면 경주 최 부잣집의 최근 4대종부의 교혼권을 보면 유성룡 가문과 두 차례, 그리고 정구(鄭逑) 정온(鄭蘊) 가문 등 깐깐한 가격인데 예외가 아니다. 종붓감으로 혼담이 오가면 특별 과외를 시키는데 상추쌈은 눈을 부라리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싸고 치마 저고리는 육선(肉線)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푼푼해야 하며 밤늦게 방에서 일할 일이 있으면 문을 이불보로 가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고된 종들을 고달프게 하지 말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 가르친다.

종부는 그 가문 전래의 가주(家酒)나 간장 된장 등 그 가문만의 특유한 맛을 내는 비법을 전승 독점한다. 정인보 선생이 명가를 돌아다니며 맛본 간장맛의 오묘한 차이를 적은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권위도 대단했다. 가문에 따라 정초 세배에서 그 가문의 장노인층이 종부를 찾아가 집단 세배를 했다. 종부보다 연장자가 많게 마련인데 종부의 위상이 나이나 항렬을 초월한 것임을 말해준다. 산재돼 있는 이 종부문화를 집대성, 무형문화재로 역사에 치부해두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종부 잔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