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55)종이 匠人

bindol 2022. 10. 4. 06:30
[이규태코너](6655)종이 匠人 발행일 : 2005.09.30 / 여론/독자 A38 면
▲ 종이신문보기조선종이 만드는 제지 인간문화재가 탄생했다. 모든 분야에서 전통을 전승하는 인간문화재는 소중하지만 유독 종이 장인(匠人)이 각별난 것은 역사와 전통속에서 그 명성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중국문헌 ‘박물요람(博物要覽)’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먹을 먹는 품이 고려지(高麗紙)만큼 겸손한 종이가 없다 했으니 종이를 둔 칭찬치고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송(宋)―명(明)―청(淸)을 통해 고려지를 얻어 글을 쓴다는 것은 상류사회의 사치요, 자랑거리였다. 중국으로 사신길 갈 때 수행원들의 휴대 필수 물품이 바로 조선종이였다. 중국의 성문 궁문 관문을 통과할 때면 뇌물을 요구받게 마련인데, 이때 조선종이 몇 장이면 무사통과했고 벼슬아치나 명사를 방문할 때 고려지를 꺼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고도 했다. 사절 일행이 북경에 가면 옥하관(玉河館)에 머물며 이웃하고 있는 아라사(러시아) 사절단과 밀무역을 하게 마련인데, 고려지로 못 사는 물건이 없었다 할 만큼 통화구실도 했다는 조선종이다. 한말에 러시아 정부가 편찬한 ‘한국지’에 보면 조선종이는 결을 찾지 않고는 찢을 수 없이 질겨 글씨 쓰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노끈을 꼬아 생활필수품을 만들어 쓴다는 데 놀라고 있다.

이미 고려지가 질기다는 것은 중국의 고자(高子)가 갈파, 누에고치를 넣어 만들어 질기기가 비단 같고 희기가 백설 같다 했다. 문헌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보면 인조 때 종이옷, 곧 지의(紙衣)를 변방에 보냈다 했고 ‘추관지(秋官志)’에 보면 상류사회에서 종이신, 곧 지혜(紙鞋)의 사치가 심해 금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종이 꽃병, 종이 술잔, 종이 갓, 종이 요강 등 별의별 생활도구를 종이로 꼬아 만들어 썼던 조상들이다. 서양가옥의 안팎 차단물인 유리는 외계를 내계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해 버리지만, 조선종이는 방 밖의 볕과 바람 습기를 쾌적하게 완충시켜 방에 자연친화적 차단을 한다. 양지(洋紙)는 산성지라 그 수명이 150년이 고작이지만 조선종이는 중성지라 3000년도 더 간다. 신라 때 지은 탑 속에서 종이에 쓴 불경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시들어 오늘에 이른 그 전통을 부활시키는 어떤 무엇을 나라에서 했던가 묻고 싶었던 차제에 탄생된 종이 장인(匠人)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