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28>도청 한국사

bindol 2022. 10. 5. 08:58
[이규태코너]<6628>도청 한국사 발행일 : 2005.07.27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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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이 떨어진 흥부는 그 고을 김부자(金富者)가 죄짓고 맞을 매(笞)를 대신 맞는 매품을 사들고 돌아온다. 한 대에 한 냥씩 30냥의 선금을 얻어들고 돌아와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먹으면서 아내에게 매품 판 일을 은밀히 하라고 타이른다. 한데 그 마을의 꾀쇠아비가 지나가다가 이 은밀한 흥부내외 간의 대화를 도청한후 동헌으로 달려가 흥부가 따놓은 매품을 가로채버린다. 이처럼 옛 마을들에는 일해서 벌어먹을 생각 않고 남들 흠을 엿듣고 그를 미끼로 갈취하는 진드기 부류가 있게 마련인데 이를 꾀쇠아비라 했다. 같은 부류로 지지배뱅이라는 도청꾼도 있었다.

옛날 시골 남녀들의 밀회장소로 가장 선호됐던 곳이 무르익은 보리밭이었다. 이 정사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이 보리밭에 둥지 틀고 사는 종달새였다. 마을에는 일 않고 빈둥빈둥 놀며 이 보리밭가에 은신하여 종달새 지지배배 하고 놀라 나는 것을 도청하는 자가 있었으며 한 건만 잡으면 한 해 양식은 거뜬히 후려낼 수가 있었다. 이 보리밭 정사의 간접 도청꾼을 지지배뱅이라 불렀다.

세상살며 숨기고 사는 것이 있게 마련이요 이를 도덕적으로 구제하는 문화와 악으로 척결하는 문화가 공존해왔다.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깊은 못가에서 고기를 보는 자는 불길한 꼴을 당하고 사람이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내는 자는 화를 면치 못한다’는 말은 전자의 경우요, 진(秦)나라 효공(孝公)때 법치 지상주의자인 상앙(商)이 부정 불법을 고자질하지 않으면 허리를 베어 죽이는 요절형에 처했기로 부자·부부·형제·이웃 간에 도청이 일상화하고 고자질이 난무하여 난세를 이루었음은 후자의 경우다.

우리나라 초기에 도입된 전화를, 텔레폰을 음역 덕율풍(德律風)이라 했는데 얼굴을 맞대하지 않음을 악용, 무척 욕설과 모략을 일삼았던 것 같다. 이에 덕율풍 감사(監使)라 하여 공중 전화기 옆에 신분을 숨긴 도청꾼을 상주시켰던 것 같다. 이에 분노한 시민이 전화기를 부수고 다니는 파동이 일기까지 했었다. 이처럼 도청문화는 도덕성과 실효성이 끝바꿈, 현대에는 정경유착의 고리로 이어져왔고 이어져 나갈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