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 이규태 코너 ]<6626>안네 프랑크 展

bindol 2022. 10. 5. 09:00
[ 이규태 코너 ]<6626>안네 프랑크 展 발행일 : 2005.07.22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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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폐허가 된 보스니아의 어린이들이 유니세프에 보낸 편지들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물도 없고 전기도 없으며 대가족이 한 달 5kg의 밀가루로 풀칠하고 사는, 학교에서는 굶주려 시들시들 조는 아이들에게 안네 프랑크가 어떻게 희망을 부둥켜안고 살았는지를, 배고파 죽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고프면 죽는다고 두 차례 세 차례 되풀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는 대목이 있다. 그 책자의 해설에는 학교 반(班)에 따라 죽는 아이가 많고 적고가 현저하여 조사해보았더니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들려준 반과 그러하지 않은 반 차이임이 드러났다고도 했다.

‘안네의 일기’를 읽어보면 그 저류에 일관된 맥이 절망 속에 꺼질 듯 말 듯 명멸하는 희망의 불빛임을 알 수 있다. 언니 마르코트와 함께 수용됐던 베르겐 수용소에서도 무척 활달한 수용소생활을 해서 절망 속에 웃음을 유발한 귀염둥이였다고 한 방에 수용됐던 말리온은 회상했다. 발진티푸스로 죽어가는데 안네는 그 전염원인 이(♥)를 피해 알몸에 담요만 감고 다니면서 혼잣말을 뇌까렸다. ‘내 피는 다 빨아먹어도 내 희망만은 빨아 먹지 못할걸…. ’ 그 작디 작은 소녀의 희망을 인류의 그 거대한 역사는 구제하지 못했다고 통탄한 것은 버트런드 러셀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루어질 티끌만한 가망도 없는 바보스럽기만 한 희망들이 저버려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는 일기 속의 대목도 안네의 일기가 보스니아의 어린아이들에게 희망을 준 것 말고도 되풀이될 인류악에 던져질 작지만 주옥 같은 진주다.

그는 신미생(辛未生)으로 살았으면 76세다. 그가 숨어살았던 방에서 그녀의 아버지 회사에 다니던 여직원이 오렌지색 표지의 일기장을 발견, 안네의 아버지에게 전했고 아버지는 일기 속에서 안네가 화장실에 들어가 국부를 들여다보았다는 대목 등 성(性)에 관한 관심 부분과 부모에 대한 반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주장 등은 아버지로서 도덕적 손질을 해서 출간했었다. 이 일기를 비롯 안네 프랑크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모은 전시회가 오늘부터 한국에서 열려 그 정신적 궤적을 더듬어 보았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