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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趙大妃(조대비)

bindol 2022. 10. 8. 10:57

[이규태코너] 趙大妃(조대비)

조선일보
입력 2005.03.15 18:17
 
 
 
 

조 대비(趙大妃)의 성대한 회갑잔치 모습을 그린 여덟 폭 병풍이 해외에서 발견되어 그 융숭함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렇게 융숭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순조(純祖)의 왕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 하고 죽어 익종(翼宗)으로 추존받았으며, 그의 왕비인 풍양 조씨 조 대비도 헌종(憲宗)을 낳았을 뿐 왕비로서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3대를 내려 누린 안동 김씨 세도에 깔려 한을 품고 살아 왔다.

철종이 병석에 누워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돌 무렵, 조 대비는 그의 친정조카인 조성하(趙成夏)로부터 편지 한 통을 은밀히 전해 받았다. 그 편지는 조성하의 장인인 이호준(李鎬俊)이 전한 것이요, 이호준과 막역한 사이인 흥선대원군의 밀서였다. 처가가 같은 여흥 민씨이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호준의 서자인 이윤용(李允用)과 대원군의 서녀가 혼인을 한 겹사돈이다. 그 편지는 후사가 없는 철종의 후계로 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천거하는 밀서였다. 대통의 승계자를 왕이 정하지 못하고 죽으면 대비가 결정하게 돼 있으므로 철종이 숨 거둘 때까지 안동 김씨의 접근을 막기만 하면 조 대비는 수십 년 원한을 풀 기회를 잡게 되는 셈이다.

김좌근 및 김문근 부자, 그리고 김병학 형제 등 안동 김씨 세도가들은 철종의 병문안을 핑계로 세도를 이을 계책을 세우고자 대궐에 들렀으나 조 대비가 미리 병석을 차지, 접근을 금한 가운데 철종은 눈을 감았고 그 순간 대권의 상징인 국새(國璽)는 조 대비 치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정치 드라마로 대권은 고종에게 돌아갔고 조 대비는 수십 년 한을 풀었으며 그런 지 5년 후에 맞는 회갑잔치다.

1등 공신인 이호준은 고종 등극과 더불어 벼락 출세, 군수직에서 승지 참판 전라관찰사 병조 형조 이조 판서를 두루 지냈고, 그의 양자인 이완용은 총리대신으로, 그의 서자인 이윤용은 군부대신으로 수직 상승을 했다. 하물며 김씨 세도로부터 왕정복고를 한 조 대비였음에랴. 병풍에 나타난 융숭함말고도, 궁에서만 기리기엔 너무 큰 경사라 하여 사형수 이외의 모든 죄수를 석방하고 세금을 내년으로 미뤄 주어 경사에 동참케 했다. 이 병풍은 정치 드라마의 한 막을 접는 라스트 신으로서 부가가치가 크다 하겠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