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실세인 이해찬 국무총리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내 손아귀에서 논다"는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론을 대변하는 신문이 권부의 손아귀 속에서 노는 경우는 셋으로 갈라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비연형(飛燕型) 손아귀다. 한(漢)나라 성제(成帝)는 연약한 조비연(趙飛燕)을 사랑했다. 어찌나 몸이 가냘프고 가볍던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고 황제는 그 손바닥 위에서 노는 자태에 혹하여 손바닥 위에서 나라가 기울었다는 말이 있기까지 했다. 밥도 숟가락 젓가락질이 무겁다 하여 황제가 떠먹여 주었을 정도였다. 그러하듯이 아양과 아부로 권부의 손아귀 속에 노는 신문이 비연형이다. 그 둘째가 부처님 손아귀다. 의인원(擬人猿)인 손오공(孫悟空)이 제천대성(齊天大聖)을 자처하고 천상 천하 지옥의 대정벌로 대적할 자가 없었지만 겪고 보니 그 광활한 무대가 겨우 부처님의 손바닥 위였다. 두려울 것 없고 또 거리낌 없으며 옳고 그름을 눈치 보지 않고 억제받지 않는 언론의 장이 부처님형 손아귀다.
마지막으로 그 손아귀 속에 잡히기만 하면 온몸이 바스러지고 사지가 촌단된다는 중국사상 굴지의 폭한(暴漢)이 당나라 환관인 유극명(劉克明)이요, 그 손아귀 속이야말로 공포의 장이 아닐 수 없다. '황제 앞에서 천하 역사들과 대결, 수박(手撲)으로 머리빡을 가루내고 팔다리를 꺾어 궁정 안을 피비린내나게 했고, 황제는 이를 즐겨 크게 상을 내리곤 했다'고 당서(唐書)는 적고 있다. 이 총리가 말한 손아귀는 전후맥락으로 보아 손아귀에 들어와 춤이나 추고 서로 좋자는 비연형이 아니요, 대범한 부처님형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두 신문더러 까불지 말라고 전제한 전후맥락에 비추어 박살 내는 유극명형 손아귀임이 자명해진다.
우리 조상들 일개 하급관리인 서리일지라도 말 한마디 쓰는 데 신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를테면 국부를 쳐 죽인 살인사건의 조서를 보면 국부를 '목불인견지처(目不忍見之處)', 곧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곳으로 쓰고 있음만 보아도 얼마나 말을 쓰는 데 고심했는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손아귀로 볕은 가릴 수 있어도 해를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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