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 글꼴은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의 글씨처럼 손으로 꾹꾹 눌러 또박또박 쓴 글씨체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정겹게 느껴진다. 요즘 동영상 자막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에 종종 등장하고, 전자책 텍스트를 칠곡 할매 글꼴로 바꿔 읽기도 한다. 할머니 글씨가 주는 투박하고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디지털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옛것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복고 열풍과도 결을 같이한다.
▷폰트에 담긴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칠순, 팔순이 넘은 칠곡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고 고도성장의 시기를 헤쳐 왔다. 시대가 주는 아픔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묵묵히 견뎌 왔을 터다. 어린 시절 학업을 묻는 질문에 권안자 할머니는 “학교 댕겼으면 좀 낫지. 근데 다 어렵게 살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원순 할머니는 “집에서 아들 공부시키고 (나는) 들에 밭 매러 다니고, 공부가 뭐라”고 했다. 그런 할머니들이 글자 한 자, 한 자를 쓰면서 깔깔깔 웃는다. 억울할 법도 한데 “내 인생 참말로 괜찮네”라고 한다.
▷할머니들의 시처럼, 할머니들의 글씨 역시 삶의 무게와 질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난해 국립한글박물관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며 칠곡 할매 글꼴을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자칫 잊힐 수도 있었던 할머니들의 역사를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유하게 됐다. 디지털 기술이 주는 선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