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횡설수설/이진영]또 수신료 내리는 NHK

bindol 2022. 10. 11. 08:42

[횡설수설/이진영]또 수신료 내리는 NHK

입력 2022-10-11 03:00업데이트 2022-10-11 08:25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 남자 주인공의 어릴 적 별명은 ‘NHK’다. 주말마다 NHK 수신료 징수원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왕따가 돼 얻은 별명. 그만큼 NHK 징수원은 악착같이 수신료를 걷는 직업으로 악명 높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에선 수신료 미납자 처벌 규정이 없어 징수원의 역할이 크다. 덕분에 수신료가 꾸준히 올라도 납부율은 80%대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 내부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4년 인기 프로인 ‘가요홍백전’ PD와 NHK 서울지국장을 지낸 직원이 거액의 제작비를 빼돌린 비리가 폭로됐다. 이듬해엔 2001년 방송된 ‘전시 성폭력을 묻는다’가 집권 자민당의 외압으로 일본에 불리한 내용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수신료 납부 거부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고, 재원의 거의 100%를 수신료에 의존하는 NHK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수신료 거부를 공약으로 내건 ‘NHK당’도 2005년 내부 비리를 고발했던 NHK 직원 출신이 만든 당이다.

▷결국 NHK는 직원 감축과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과 방송 공정성 확보 방안을 담은 ‘신생플랜’을, 2008년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2년 수신료 7% 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로도 수신료는 인하를 거듭해 현재는 월 1275엔(약 1만2000원)이다. 최근엔 내년 10월 추가 인하안까지 발표했다. 5년 새 3번째 인하다. 수신료 인하로 인한 적자는 적립된 잉여금과 군살빼기로 메운다는 계획이다.

 
▷일본에서도 NHK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수신료 미납자 처벌 조항을 두자는 제안이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못할 때 시청자들이 수신료 거부권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대 논리를 넘지 못했다. 젊은층이 다양한 민영 방송으로 옮겨가면서 ‘안 보는데 왜 내느냐’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도 걸림돌이다. 결국 NHK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경영을 합리화하고 수신료를 인하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KBS는 국회에 수신료를 월 3800원으로 올려 달라면서 경비 절감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이 51.3%로 1년 새 4.9%포인트 늘어났다. 지상파 중간광고까지 허용되자 지난해 광고 판매액은 2705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16.7% 증가했다. 막대한 광고 수입에 수신료 수입까지 보장되니 방만 경영과 편파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KBS와 한전의 3년 주기 수신료와 전기료 통합 징수 계약이 2024년 끝난다. 전기 끊길까 억지로 수신료를 내는 징수제도를 손봐야 시청자 무서운 줄 알고 공영방송의 질도 경영도 나아질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