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큰코 선발대회

bindol 2022. 10. 12. 07:53

[이규태코너] 큰코 선발대회

조선일보
입력 2004.08.03 18:34
 
 
 
 

고추 고장인 청양에서 열릴 고추축제에서 코 큰 사람을 선발한다는 광고물이 서울 지하철에 나붙어 논란이 되고 있다. 붉은 큰 고추로 코를 대신한 이 광고물이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왜 논란의 대상이 될까. 며느리가 진통을 시작하면 시어머니는 산실 앞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다가 아기울음 소리가 터져나오면 ‘고추냐 보리냐’라고 묻게 마련이다. 고추는 사내아이를, 보리는 계집아이를 뜻하는데 성기의 모양을 빗대어 그렇게 불렀다. 모양새가 비슷한 것끼리는 비슷한 효력을 갖는다는 유감주술(類感呪術)로, 갸름한 고추는 사나이 성기와 유감(類感)하고 사나이 성기는 외모 가운데 갸름한 코와 유감한다. 유감주술 법칙에서 ‘고추=코’라는 등식(等式)이 형성되며, 그래서 큰 코 선발의 상징성에서 성기가 암시됐다 해서 선정적이고 저속하다는 논란이 야기된 것일 게다.

‘심청전’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뺑덕어멈의 행실을 보자면 “양식 주고 떡 사먹기/밥 푸다가 이 잡기/코 큰 총각 술사주기-” 등으로 나온다. 경주 남산의 그 많은 석불(石佛) 중에 코가 남아 있는 석불이 어느 하나도 없다. 그 코를 떼어 가루 내어 사나이가 먹으면 정력이 강해지고, 아낙이 먹으면 사내아이를 밴다는 속전(俗傳) 때문이다. 코를 잘라내는 괄비(刮鼻)라는 사형(私刑)이 있었는데, 간음이나 강간을 저지른 사나이에게 베푼 상징적 거세형인 것이다. 정일대(丁一大)의 ‘속지해(續志諧)’에 ‘코 큰 사나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큰 코에 속은 음부(淫婦) 이야기다. 중국에서도 유종원(柳宗元) 같은 품격 높은 학자도 ‘하간전(河間傳)’을 남겼는데, 같은 내용이다. 백인사회에서 숙녀 앞에서 코를 만지는 것이 큰 실례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폴리의 여왕 요한나는 주변에 코 큰 사나이만을 끌어들인 걸로 유명하다. 그들 가운데 처형당한 자가 적지 않았는데 ‘코가 짐(朕)을 속였다’는 죄목이었다. 큰 코 선발을 둔 논란에 대해 행사 당사자는 강한 이미지 표출로 이해를 바라고 있는데, 정치 사회 각 측면에서 돌출사태가 빈발하고 튀는 것이 장땡인 세태의 한 표출이 아닐까 싶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조선일보
입력 2004.08.03 18:34
 
 
 
 

고추 고장인 청양에서 열릴 고추축제에서 코 큰 사람을 선발한다는 광고물이 서울 지하철에 나붙어 논란이 되고 있다. 붉은 큰 고추로 코를 대신한 이 광고물이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왜 논란의 대상이 될까. 며느리가 진통을 시작하면 시어머니는 산실 앞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다가 아기울음 소리가 터져나오면 ‘고추냐 보리냐’라고 묻게 마련이다. 고추는 사내아이를, 보리는 계집아이를 뜻하는데 성기의 모양을 빗대어 그렇게 불렀다. 모양새가 비슷한 것끼리는 비슷한 효력을 갖는다는 유감주술(類感呪術)로, 갸름한 고추는 사나이 성기와 유감(類感)하고 사나이 성기는 외모 가운데 갸름한 코와 유감한다. 유감주술 법칙에서 ‘고추=코’라는 등식(等式)이 형성되며, 그래서 큰 코 선발의 상징성에서 성기가 암시됐다 해서 선정적이고 저속하다는 논란이 야기된 것일 게다.

‘심청전’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뺑덕어멈의 행실을 보자면 “양식 주고 떡 사먹기/밥 푸다가 이 잡기/코 큰 총각 술사주기-” 등으로 나온다. 경주 남산의 그 많은 석불(石佛) 중에 코가 남아 있는 석불이 어느 하나도 없다. 그 코를 떼어 가루 내어 사나이가 먹으면 정력이 강해지고, 아낙이 먹으면 사내아이를 밴다는 속전(俗傳) 때문이다. 코를 잘라내는 괄비(刮鼻)라는 사형(私刑)이 있었는데, 간음이나 강간을 저지른 사나이에게 베푼 상징적 거세형인 것이다. 정일대(丁一大)의 ‘속지해(續志諧)’에 ‘코 큰 사나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큰 코에 속은 음부(淫婦) 이야기다. 중국에서도 유종원(柳宗元) 같은 품격 높은 학자도 ‘하간전(河間傳)’을 남겼는데, 같은 내용이다. 백인사회에서 숙녀 앞에서 코를 만지는 것이 큰 실례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폴리의 여왕 요한나는 주변에 코 큰 사나이만을 끌어들인 걸로 유명하다. 그들 가운데 처형당한 자가 적지 않았는데 ‘코가 짐(朕)을 속였다’는 죄목이었다. 큰 코 선발을 둔 논란에 대해 행사 당사자는 강한 이미지 표출로 이해를 바라고 있는데, 정치 사회 각 측면에서 돌출사태가 빈발하고 튀는 것이 장땡인 세태의 한 표출이 아닐까 싶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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