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폭염 경보제

bindol 2022. 10. 13. 15:43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폭염 경보제
입력 2004.08.01 18:19:44 | 수정 2004.08.01 18:19:44

하루에 수백 명씩 더위를 먹어 죽어가는 인도 비하르 지방의 한더위는 섭씨 50도 넘는 날의 연속이다. 불교 성지가 집중돼 있는 이 지역에 그 기온이 예보되면 오전 10시부터 통행금지령이 내린다. 해외여행자로서 그 기상 통제에 순응할 수 없어 경찰관서를 찾아가 항의한 적이 있다. 양식화된 서약서를 내밀며 서명하면 통행할 수 있다 했다. 이 폭염으로 사망 또는 인신상의 변고가 있을 때 인도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서약내용이었다. 생사 간이 이렇게 가깝게 와 있는 현장임을 절감했으며 부처님이 이곳에서 탄생한 이유를 절로 알 것 같았다. 또한 이 지역에서 연꽃이 성화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이 폭염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 아침 연잎 위를 구르는 물방울의 크기와 연꽃 빛깔의 농담(濃淡)으로 그날 폭염의 정도를 세분하는 지혜를 얻는다 했으니 연꽃은 폭염 경보기기로 생명의 수호자였다. 케냐 야생공원에서 일하는 마사이족들은 더위를 온도로 말하지 않고 사자의 날이니 자칼의 날이니 하고 짐승 이름으로 나타낸다. 아프리카 특정 짐승은 어느 온도를 웃돌면 기계 멎듯 행동을 멈추기에 그날 기온을 그 짐승 이름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문명의 고저와는 아랑곳없이 나름대로 폭염에 대처하는 경보시스템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폭풍주의보, 홍수경보, 심지어 오존주의보에 이르기까지 자연 재난에 대비하는 예보제가 있으면서 같은 재해를 몰아붙이는 폭염(暴炎)에는 예보가 없다. 더욱이 지구 온난화가 폭염을 더해가고 있고 세계적으로 노인 경시 풍조가 팽배, 독거노인이 급증하여 미개사회뿐 아니라 최첨단 문명사회에서 폭염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작년 여름 폭염으로 프랑스에서 1만여명이 죽었는데 거동이 어렵고 먹고 마시는 것을 제대로 못하는 독거노인이 주축이었다. 원시사회에나 있었던 기로속(棄老俗) 살로속(殺老俗)이 급속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인명뿐 아니라 고온이 유발하는 고속철 궤도의 용해가 몰아올 대형사고 등 시대의 추이에 부응, 소방방재청은 열재해 지수를 만들어 폭염 예보 시스템을 제도화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니 그것을 알고 재촉하는 듯한 찜통더위의 연속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