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서역의 고구려사신

bindol 2022. 10. 13. 17:00

[이규태코너] 서역의 고구려사신

조선일보
입력 2004.07.02 18:33
 
 
 
 

실크로드의 길목 서역(西域) 사마르칸트 인근은 고대 터키인 돌궐제국의 지배 아래 강국(康國) 석국(石國) 조국(曹國) 하국(何國) 미국(米國) 사국(史國) 등 씨족국가들이 활거했는데 그중에는 당나라에 지배당하면서 귀화성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그 후손이 번져왔다. 이 돌궐왕궁터에서 발굴된 7세기경 벽화 속의 두 인물이 예상했던 대로 고구려 사신임이 확인됐다. 현지 박물관이 이 벽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명문(銘文)을 발견, 상석에 앉은 분이 돌궐의 바흐르만(拂呼? 650~670) 왕임도 밝혀졌다고 이곳에 들른 인하대 학술조사단이 확인했다 한다. 그 벽화 왼쪽에 머리에 새 깃 두 개를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쓴 두 사람이 보이는데 고구려, 백제 또는 신라 사신이라는 설이 그동안 엇갈려왔다.

고대 한국인은 새를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사자(使者)로 신성시하여 임금으로부터 목민관에 이르기까지 새 깃을 머리에 꽂아 천심(天心)의 안테나로 삼았으며 신라 출토 금관들의 두 날개는 바로 이 두 개의 새깃을 수용한 것이다. 고구려를 무력으로 견제해온 당나라를 따돌리고 멀리 서역까지 외교의 폭을 넓혔던 고구려의 기상을 새삼스럽게 하는 역사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에 보면 이미 영양왕 때(607) 고구려사신이 이곳 돌궐의 계민왕(啓民王) 장막에 파견되어 수(隋)나라를 협공하는 한·터키 연합전선을 모색했으며 수양제(隋煬帝)에 들켜 응징으로 고구려를 침공하겠다는 공갈을 받은 적이 있어 서역 사행(使行)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서역 오르혼강 유역에서 발굴된 당시 돌궐비문에 당나라의 침공으로 받은 참상이 적혀있는데 돌궐의 귀인들은 돌궐이름을 버리고 당나라 이름을 택했다 하고 이어 ‘동쪽에 해뜨는 나라 고구려왕마저도 무릎 꿇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곧 벽화가 그려진 시대는 당의 침략으로 돌궐과 고구려가 패망 직전으로, 상생상구(相生相救)를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외교활동이었을 것이 자명해진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