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경덕진 도자기전
독재 공포정치를 베풀었던 청나라 옹정제(雍正帝)가 영문 없이 급서했다. 실록에는 병으로 이틀 동안 앓다가 죽은 것으로 돼 있지만, 항간에는 맹독에 의한 즉사로 소문났었다. 그 가장 유력한 사인으로 옹정제의 어용 도자기에 비장시킨 맹독이요, 그 음모의 현장이 황제의 어용 도자기를 만드는 경덕진으로 드러났다.
북송(北宋) 경덕(景德) 연간에 이곳에 도요지를 두었다 하여 지명이 돼 버린 경덕진(景德鎭)에서는 역대 왕조의 그릇을 굽는 어기창을 대신해 왔기로 최고급 최정예의 도자기의 대명사가 돼 내리기도 했다.
이 경덕진에 도자기 그림을 그리는 화장(畵匠)으로 여사랑(呂四娘)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인 주자학자 여유량(呂留良)의 저서에 옹정제의 비위를 건드리는 대목이 있다 하여 무덤을 파 목을 자르고, 그녀의 아버지 여의중(呂毅中)을 비롯해 제자들까지 참형에 처했으며 손자들은 뿔뿔이 유형(流刑)으로 일가멸족을 당했다.
유형당한 채 원한 속에 앙심을 품고 자란 손녀 가운데 하나가 여사랑이다. 그녀는 복수 수단으로 온갖 신고 끝에 황제가 입에 대는 그릇에 그림을 그리는 화장으로 일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어용 찻잔 가장자리에 그림을 그리면서 열이 여러 번 닿으면 녹아 흐르게끔 맹독을 비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경덕진은 한동안 폐쇄되었다가 청말에 부활되어 중국뿐 아니라 세계 도자기산업의 첨단 기지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의 화교거리를 걷다 보면 쇼윈도에 ‘景德鎭’이란 글을 내붙이고들 있는데, 최고급 도자기를 팔고 있다는 뜻이다.
청나라 때 사신길을 따라갔던 조선 사람들이 선물로 경덕진을 사와 많이 퍼뜨렸다 했는데, 여기에서 경덕진은 도자기가 아니라 경덕진에서 나오는 음희 도자인형의 은어(隱語)다. 춘희자로 불리는 이 도자인형으로 경덕진은 한국 역사와 연관을 맺어온 것이다.
지금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1500년 역사의 경덕진 명품 60여점을 들여와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하여 경덕진 비사를 훑어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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