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손가락 소포

bindol 2022. 10. 14. 08:14

[이규태코너] 손가락 소포

조선일보
입력 2004.06.23 18:45
 
 
 
 

어린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해온 범인이 보석되자 담당 판사에게 잘린 손가락 하나가 배달되었다. 인면수심에 격앙한 범인의 아내요 피해 어린이의 어머니가 보석에 대한 항의를 그렇게 끔찍하게 표출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손가락은 인체의 한 부위 이상의 진한 뜻이 있어 왔다.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사람은 종교의식에 준해서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손바닥과 손가락을 맞춘다. 가장 예민하게 무형의 소원을 대행하는 유형의 부위가 손가락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 때 여인 욱면이 아무리 염불을 하고 합장기도를 해도 세속에 흩어진 마음이 모두어지질 않자 합장한 두 손가락을 송곳으로 뚫어 노끈으로 꿰어 합심을 추구하기까지 했다. 수도승을 두고 쌍단지승(雙斷指僧)이니 삼단지승(參斷指僧)이니 하여 그 도통의 크기를 가늠했는데 세속과의 갈등을 손가락 자르는 것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충심이나 효심이 머무는 곳도 손가락이다. 부모가 앓아누우면 효자 효녀는 손가락에 기름칠하여 불을 켜고 비는 소지기도(燒指祈禱)를 했고 대의를 위해 결의할 때 손가락을 자르거나 그 피를 내곤 하는 단지(斷指)관행도 그것이다.

 

아버지-남편-아들 3대를 영의정으로 받든 유일한 복많은 송 부인은 맹렬 여성이었다. 신부인 송 부인의 투정이 혹심하다는 것을 떠보고자 신랑 홍씨가 술상 들고 오는 예쁜 계집종의 손을 짐짓 잡았다. 그러고서 사랑에 나가 있는데 신부가 보로 덮은 상하나를 들여놓는지라 열어보았더니 그 계집종의 손가락들이 잘려 접시에 놓여 있었다.

용한 점쟁이를 신접(神接)무당이라 하고 비장하고 있는 신물을 작동시키면 저승에 있는 사자(死者)와 대화를 했다. 그 유명간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신물을 어린 아기의 손가락으로 만들었다. 며칠 굶긴 젖아기를 가둬놓고 젖통을 접근시킨다.

그 아기의 생명이 그 손가락 끝으로 집결, 농축된 그 순간 손가락을 잘라 신물로 삼았으니 손가락은 신통력의 비정한 발전소이기도 하다. 소포 속의 손가락은 인체의 한 부위가 아니라 한이나 원까지 포함한 인간 심정의 극소인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