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코벤트리의 톰

bindol 2022. 10. 14. 08:12

[이규태코너] 코벤트리의 톰

조선일보
입력 2004.06.25 17:54
 
 
 
 

실크로드 복판에 위치하여 동서무역에 상재(商才)를 부렸던 소그드 상인은 아기가 태어나면 탄생의식을 베푼다. 눈두덩에 꿀칠을 하여 눈을 못 뜨게 하고 손바닥에 아교를 쥐어줌으로써 펴지 못하게 했다. 상담(商談)할 때 이윤이나 물욕에 눈을 밝히지 말라는 눈두덩에의 꿀칠이요, 한번 들어온 재(財)는 악착스레 놓치지 말라는 손바닥에의 아교칠이다. 소그드 상인의 상재를 지탱해온 상업철학을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터득시켰던 것이다. 시집갈 때 가마에 오르기 직전 한국의 어머니는 울면서 신부의 눈에 꿀칠을 하고 목화솜으로 귀를 틀어 막으며 어금니에 대추 씨앗을 물림으로써 매사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시집살이 철학을 그렇게 터득시켰다. 임금님이 쓰는 면류관(冕旒冠)은 권위를 과시하는 관이 아니라 그와 같은 왕도(王道)철학의 구상(具象)이었다. 면류관 앞에 주렁주렁 드리운 구슬줄로 눈앞의 시야를 가리고 양쪽에 드리운 솜막대로 귀를 막아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를 차단함으로써 먼 발치에 있는 백성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듣도록 경계하는 면류관이다.

이처럼 인생 살아가는 데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면 억제 못하고 달려드는 행위는 인간해방이라는 미명으로 근대화와 비례해서 증폭해왔으며, 터부(禁忌)를 깨면 반드시 재앙이나 불행이 닥친다는 세계 공통의 터부문화가 이지러진 작금이다.

라빈의 ‘영국사’에 보면 1040년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가 주민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자 그의 아내 고다이버 부인이 거두지 말기를 간청했다. 이에 영주는 나체로 말을 타고 성 안을 한 바퀴 돌면 폐지하겠다 하자 나체승마로 일주했고 내다보는 주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야복장이 톰이 옥상 창틈으로 엿보았으며 그로써 저주받아 장님이 되어 여생을 살아야 했다. 지금 이라크에서 참변을 당한 김선일씨의 참상을 찍은 동영상이 미국의 한 사이트를 통해 국내에 유입, ‘코벤트리의 톰’ 양산이 가능케 됐다 한다. 김씨를 국내에서 다시 죽이는 행위로 지탄하고 있지만 톰의 저주를 자초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