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닝보(寧波)

bindol 2022. 10. 14. 08:21

[이규태코너] 닝보(寧波)

조선일보
입력 2004.06.15 17:21
 
 
 
 

한반도 남서해의 해류가 제주도 근해에서 남서쪽으로 흘러가 닿는 곳이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다. 성종 때 제주도에서 벼슬살이 하던 최부(崔溥)가 부친상을 통보받고 배를 탔다가 난파, 이 해류에 휩쓸려 근 한 달 만에 가 닿은 곳이 닝보였다. 유럽열강의 상선들이 집산하는 당시 가장 큰 외항인지라 해적들도 들끓어 그 외해에서 해적의 습격까지 받았다. 금은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며 몸속에 숨겼을 것으로 의심하여 모든 일행을 벌거벗겼다. 최부에게 갓을 벗기려 들자, 선비의 상징이요 벼슬의 동일성인 갓을 벗기는 것은 인격을 배반하고 임금을 저버리는 것이라 하여 완강하게 버텼다. “목을 베어 갓 속을 뒤져볼지언정 벗을 수 없다”고 하자 목을 베려고 들었다. 거꾸로 매달아 작두로 목을 베길 거듭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그들 나름의 징크스가 있었던지 살려두고 도망쳐버렸다.

이처럼 표류민이 잦았기로 역사시기에 한국사람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땅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3년 후 남원부사로 부임한 유몽인(柳夢寅)이 왜란 중 남원땅에서 있었던 한 이야기를 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적어 남겼는데, 그 무대도 닝보다. 정유재란 때 남원을 지키던 명군(明軍) 사령관 양원(楊元)의 별패(別牌)로 종군하던 남원 젊은이 정금(鄭金)은 패주하는 양원을 따라 명나라로 건너가 닝보에 정착, 어부로 살고 있었다. 한편 그의 젊은 아내 홍도(紅桃)는 남편과 이산, 남장여인으로 숨어지내다가 왜군에 납치되어 일본 규슈(九州)의 노예시장에서 포르투갈 상선에 헐값으로 팔린다. 닝보는 남만(南蠻)교역의 중심지였기에 이 홍도를 실은 배가 닝보항구에 들르게 되었다. 깊은 밤 홍도는 낯익은 피리소리를 듣는다. 피리의 명수였던 남편이 향수에 겨워 밤마다 해변에 나와 불던 피리소리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 두 기구한 인생이 해후하게 된다. 닝보 엘레지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송나라 때부터 많은 한국인이 와 머물던 조선사관터에 그 교류사를 재현하는 기념관이 선다는 보도가 있어 뒤돌아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