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어린이 인주

bindol 2022. 10. 23. 06:16

[이규태코너] 어린이 인주

조선일보
입력 2004.04.18 18:20
 
 
 
 

경주 박물관 미술관 신축예정지에서 신라시대의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어린이 유골이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고로 죽었을 경우와 제사의식으로 인신공양됐을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후자일 확률이 높다. 그 이유로 그 발굴 지점이 옛 왕궁터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삼국시대에 큰 공사를 할 때에는 인주(人柱)라 하여 산사람을 생매장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왕궁을 지을 때 희생한 인신일 확률이 크다. 삼국시대 둑인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수문 돌기둥 아래에서 인골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축조할 때 희생시킨 인주일 것이다. 신라 경덕왕 때 봉덕사의 종을 만드는 데 실패를 거듭한지라 신명의 노여움 때문이라 하여 어린이를 희생하고서야 종이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에밀레종이라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절요’에 보면 고려 무신제도의 극치인 최충헌(崔忠?)이 100여채의 민간 집들을 강탈, 저 살집을 대궐처럼 짓는 데 몰래 동남동녀를 잡아와 오색 옷을 입혀 네 모퉁이에 묻어 토목의 기운을 눌렀다 했다. 고려 충혜왕이 대궐을 늘릴 때도 민가의 어린이 수십 명을 붙들어 주춧돌 밑에 묻었다 했고 이로 인해서 집집마다 아이를 안고 도망치거나 숨겨 기른 자가 많았다 했다. 서울 천도 후 도성을 쌓을 때도 삼십삼천(三十三天)의 보우를 받는다는 뜻에서 33구의 인주를 성 밑에 묻었다는 구전이 나돌았고 경복궁을 복원할 때도 인주를 세우고자 어린이를 납치한다 하여 어린이들이 갇혀 살았던 한때가 있었다.

큰 역사(役事)를 할 때에는 신명들에게 치성을 드리지 않으면 그 역사를 해코지한다는 생각은 원시적 사고로 동서가 다르지 않다.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이 노후에 얻은 혈육의 희생을 계시받은 것이라든지 이스라엘의 영웅 에프타가 개선하면서 반가워 달려오는 외동딸을 희생하는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지배자가 될 것을 신탁받는 등 사람이 가진 가장 소중한 혈육의 희생일수록 치성도가 높다고 여긴 데도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경주 옛 왕궁터에서 발굴된 이 어린이 유해야말로 이 인주의 조건에 합당하며 한국 희생문화의 희귀한 물증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