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자이툰병사의 수염

bindol 2022. 10. 23. 06:23

[이규태코너] 자이툰병사의 수염

조선일보
입력 2004.04.11 18:19
 
 
 
 

이라크와의 친선축구에서 이라크를 응원하러 나온 자이툰부대 병사들이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지 사람들과의 위화감을 줄이고자 권장된 수염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수염을 기른 이가 에덴동산의 아담으로 돼 있다. 시인 바이런이 읊기를 아담과 이브가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은 직후 남성의 상징으로 아담에게 수염이 났다고 했다. 그 에덴동산이 있었다는 이라크에 파병되는 한국 병사들이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수염의 고향에 들르는 원초적 예의인지 모를 일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땅굴 속에서 잡혀나온 후세인에 이르기까지 수염을 기르지 않은 아랍의 제왕이나 지배자는 없었다. 반면에 궁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했는데, 아랍의 환관들은 성불구가 아닌데도 얼굴에 수염이 없다. 이집트에서 여왕이 등극하면 가발수염을 하고 정사를 보았을 만큼 권위의 상징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죄인은 수염을 절반 깎는 것으로 응징했고 포로들은 잡힌 족족 수염을 깎였다. 지금도 수염에 걸고 맹세하는 것만 미루어 보아도 수염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열사(熱沙)와 모래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이라고 말한 것은 아라비아 로렌스로, 수염이 입의 건조와 흡입하는 공기의 건조를 완화해줄 뿐 아니라 흡입되는 미세한 모래를 수염가닥이 결집시킨다고도 했다.

십자군 원정을 앞둔 12세기쯤 유럽의 병사들은 이라크 파병을 앞둔 한국 병사와는 반대로 수염을 깎는 것이 관행이었다. 한데 원정 중 현지에 적응하여 콧수염을 길렀는데 이 수염을 아랍인으로서 회교도를 뜻하는 ‘사라센 수염’이라 일컬었다. 추후 십자군에 가담한 희랍·로마 병사가 야간 포위전투에 참전했을 때 수염 기른 십자군을 아랍군으로 오인, 아군끼리 전투가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해군 병사들의 콧수염을 두고 갈팡질팡하여 우유부단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아랍지역에 파견할 병사에 한해 콧수염 기르는 것을 허락한 데 대한 오해라는 설도 있다. 곧 장군의 수염이 카리스마용이라면 병사의 수염은 생존의 조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