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노점상 세계대회
몸 팔고 사는 색주가 수심가에 「우리네 정은 종각(鐘閣)의 한길인가/ 늘었다 줄었다 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지금의 종로 큰길 양편에 팔도에서 일용품 파는 무시로 장수들이 몰려와 노점을 벌였다.
이 좁아진 한길에 벼슬아치 행차가 있을 때마다 길을 비키는 벽제를 했는데 행차가 끝나면 죽 떠먹은 자리처럼 좁아진다 해서 색주가 정을 빗댄 것이다. 개화기에 서울서 살았던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신기하게 생각한 것으로 상점에 상품이 없다는 점을 들었는데 중상류층에서는 단골 거래를 했기에 상품을 깊이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곧 전통사회의 서민들은 노점에서 일용품을 샀고, 요기와 술 한잔을 노점에서 때웠던 것이다.
희랍에 반했던 영국시인 바이런에게 그 반한 이유가 찬란한 헬레니즘 때문인지 물은 적이 있다. 그 대꾸는 엉뚱한 것이었다. 아테네 부둣가의 한 포장마차에 들렀을 때 잘못 접힌 재킷의 깃을 바로잡아 주던 아주머니의 티 없는 인정이 희랍을 못 견디게 좋아하도록 만든 동기라고 했다.
노점은 그 나라, 그 도시의 인심·인정이 살아 있는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자카르타에서 노점을 라마카키(五足)라 하던데 수레바퀴 둘, 수레 받침대 하나, 끌고 다니는 사람다리 둘, 합해서 오족이다. 마닐라 대학가인 케손 큰 거리는 노점거리인데 외국인에게 보이기 창피하다 하여 이멜다 부인이 대(對)노점 전쟁을 선포했지만 죽 떠먹은 자리였다.
케냐의 의류 파는 노점에서 샌들을 샀는데 수퍼보다 30% 쌌던 기억이 난다. 또 홍콩에서 「평민야총회(平民夜總會)」라는 이동 노점무대에 앉아본 적이 있는데 바로 서민 나이트 클럽이며, 뉴델리에는 다리미질하고 다니는 노점까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세상 없는 도시 없이 다 있는 노점이요, 그 나라 정취와 인정이 숨쉬는 문화 현장인데도 국제화의 진행으로 치부로 부각된다 하여 공권력의 철수대상이 돼온 데 예외가 없다. 그 생존권의 대정부투쟁에 힘을 싣고자 조직을 국제화했으며, 그 대회가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그 나라에 가면 노점에 가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관광 유인요인 발굴도 강구했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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