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新고비族
인색할 정도로 근검절약하는 사람을 고비(高蜚)라 하는데 「어우야담」에 보면 충주사람으로 나온다.
장사를 하여 큰 부자가 됐는데 인색하여 나들이 할 때에는 집안 곳간을 손수 잠그고 다녔다. 언젠가는 밀가루 몇 되를 곳간에 못 들여놓은 것을 보고 처첩들이 손을 못 대게끔 얼굴 도장을 찍어놓고 나가기까지 했다.
재물 많이 모으기로 소문나자 고비의 재테크를 배우고자 팔도에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에 고비는 날을 잡아 이 사람들을 성곽에 모이게 하고 지망생 하나를 아랫도리를 노출시킨 다음 그 나무에 오르게 했다. 어느 만큼 오르자 가지 끝까지 타고 나가라 하더니 두손으로 가지를 잡고 늘어지라 시켰다.
휘청 늘어지자 길가던 부녀자들이 올려보고 손가락질하며 웃어댔지만 어찌할 길이 없다. 두손 가운데 한손을 놓으라 시켰다. 와들와들 떨며 한손을 놓자 다른 한손마저 놓으라 시켰다. 놓으면 떨어져 죽게 돼 있는데 놓을 수가 없어 돈 벌지 않을 테니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고비는 성곽에 모인 사람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재물이 들어올 때 남들의 비웃음이나 손가락질에 둔감해야 하는 것이 그 하나요, 일단 재물이 들어오면 붙들고 놓지 않기를 나무 붙들 듯 하라 하고 돌아섰다. 인색도 이 정도면 철학이다.
신용카드는 편리한 소비수단인 것을 어른들의 도덕적 추스름이 없어 청소년들을 낭비의 함정 속에 몰아넣었었다. 거기에 불경기가 덮쳐 나어린 백수가 늘어나면서 그 반작용으로 20~30대에 독하게 아껴쓰는 고비(高蜚)족이 탄생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하루 2000원 쓰기 클럽 등을 만들고 그 소비명세를 날마다 올려 약속 틀을 넘지 않게끔 하고 자아비판도 서슴없이 하여 자제하는 이 고비족 클럽이 3백여개로 늘어가는 추세이며 2만5000명의 회원을 거느리는 대형 클럽까지 생겨나고 있다 한다.
입던 옷가지니 아이들 노리개 등 쓰던 물건도 이 클럽시장에 내놓아 재활용하고 그 근검절약 사례로 자극받아 고비정신이 확산 일로에 있다. 고비는 적당한 때 잘 부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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