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걸어다니는 물고기

bindol 2022. 10. 25. 05:44

[이규태코너] 걸어다니는 물고기

조선일보
입력 2004.02.23 18:51
 
 
 
 

뉴욕 인근 한 생선가게에서 살아있는 연어 한마리 목을 자르려하자 「말세니까 기도하라」는 유대말을 했다고 뉴욕타임스와 BBC방송이 보도하여 화제가 되더니 이제 미국 연안과 호수에 맹독성의 걸어다니는 물고기가 나타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몸길이 1m에 몸무게 7㎏의 큰 몸집으로 육식성이며 가슴 지느러미로 땅위를 걸어 이동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환경 파괴에 인한 생태계 변화로 생겨난 돌연 변종인지 그전부터 있었던 어종이 진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다.

걸어다니는 물고기는 옛 이야기나 동화속의 호재(好材)였다. 판소리 「토별가」에서 토끼는 용왕이 필요로 하는 간을 얻고자 용궁에 유인되어 환대를 받는데 용궁의 미녀들 모조리 입을 맞춘다. 그 용궁 미녀들이 모두 어두 인신으로 걸어다니는 물고기였다.

동해안의 달밤에 문어란 놈이 물에서 나와 남편의 출어(出漁)로 지키고 있는 독수공방 영창 앞을 어른거려 가슴 설레게 하기도 한다. 중국 문헌 「자불어(子不語)」에 해승(海僧)이라는 걸어다니는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어부가 걷어올린 그물 속에 걸린 큰 생선이 사람을 보자마자 합장을 하고 배 지느러미로 배위를 걸어다녔다 해서 해승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다. 921년 북미주 연해에 파도에 밀려 표착한 난파선 딜링호의 갑판에 걸어다니는 생선들이 오갔다는 보고도 있는데 이 해승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로마 프리니우스의 「박물지」에도 육지에 올라 뛰어다니는 해토(海兎)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맹독이 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독에 감염되어 임신부가 보면 그 자리에서 낙태된다고 했다. 중국 문헌 「산해경(山海經)」에는 사람의 그늘만 보아도 모래를 뿌린다는 걸어다니는 생선 역( ) 이야기가 나온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문집에 사람의 발처럼 생긴 지느러미로 걸어다니는 현라(玄羅)라는 물고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보행(步行) 물고기 출현은 지상의 동물에게 수륙간의 서식공간에 차별을 철폐하는 진화의 조짐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