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한맹 세대

bindol 2022. 10. 26. 16:13

[이규태코너] 한맹 세대

조선일보
입력 2004.01.04 18:25
 
 
 
 

문화의 이상적인 발전은 수직(垂直)전승하는 전통문화와 수평(水平)전승하는 외래문화가 조화됐을 때 가능하다. 이 수직문화 전승 수단이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에서는 한문이다. 한데도 동북아의 후진함이 한문에 있다는 야릇한 논리로 한자 배척운동이 기승을 부려 중국에서는 쑨원(孫文) 이래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기까지 로마자 혼용으로 한자배척운동이 일었었고 일본에서도 미군정의 압력으로 한자교육을 축소시켰으며 한국에서는 교육에서 한자를 추방시켜왔다.

북한에서는 아예 모든 분야에서 한자를 나라 밖으로 축출해 버렸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상용한자 2500자 일본에서는 1945자를 제한, 수직문화의 벽돌 초석을 단단히 해놓았고 북한에서도 한자 없이 감당할 수 없었던지 1968년부터 대학 나올 때까지 3000자의 한자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오로지 우리나라만이 한맹(漢盲)세대의 폭을 넓혀와 문화전승이나 교류에 있어 지적 손실은커녕 중국과 일본과의 통상교류에서까지 지장을 초래하고 있어 경제5단체에서 휘하 기업으로 하여금 한문 모르는 사원은 뽑지 말도록 시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말 가운데 순우리말이 24% 외래어가 6%로 나머지 70%는 한자에 뿌리를 둔 한자어다. 70%나 되는 우리말을 터득하는 데 한자교육은 필요불가결이다. 이를테면 ‘계집 녀(女)’의 뜻 하나만 알면 계집녀 변의 한자 300여자의 뜻을 절반은 알고 든다. ‘할미 고(姑)’는 낡은(古) 여자요 ‘지어미 부(婦)’는 빗자루 든 여자로 그 뜻을 알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계집녀(女)자가 위아래에 든 흔히 쓰는 우리 낱말 400여개도 절반의 뜻을 알고 든다.

한·중·일 상용공통한자가 1632자라지만 이 같은 한자의 경제적 구조 때문에 몇 백자만 익히면 기하급수로 습득할 수 있는 힘 안 드는 문자다. 입시과외로 젊은 세대를 초주검시켜 놓았으면서 이만한 한자습득의 노력을 아껴 겨우 얻은 것이 한·중·일 통상실무로부터의 소외였던가. 동북아시대의 기치를 들고 앞서가는 척하더니 맨 꼴찌에서 한맹세대에 끌려 뒷걸음치는 기구한 몰골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