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근정전과 용
한미수교조약을 맺게 되면서 국기의 필요성이 절박해지자 중국에서 보낸 사신인 마건충(馬建忠)이 그 국기 도안을 이렇게 제안했다.
흰 바탕에 푸른 구름을 아래로 깔고 그 구름 위에 붉은 용을 그려 조선 국기로 삼자는 것이었다. 흰 바탕은 백성을, 푸른 구름은 관원(官員)을, 용은 임금을 나타냄으로써 군·관·민(君官民) 일체의 조화를 표방한 것이라 했다.
이 제안에 조건이 붙었다. 당시 중국 국기에도 용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용과 구별하기 위해 용발톱을 하나 줄여 네 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굳이 나라의 상징인 국기에 용을 도입하려 한 것이며 용발톱에 차등을 두려 했음은 중국의 속국임을 표방하려는 저의가 드러나 있음을 알겠다.
이에 당시 총리였던 김홍집(金弘集)은 그리기 번잡하다는 핑계로 홍룡(紅龍) 청운(靑雲)을 홍청 태극(太極)으로 수용한 척하고 팔도를 상징하는 팔괘를 더하는 수정을 한다.
용은 천자만이 쓸수 있는 상징물이요 그 아래 왕후(王侯)는 봉황을 상징물로 쓰게 하여 종속관계를 표방해온 지배철학이었다. 임금이 정사를 볼 때 입는 옷을 용포(龍袍)라 하는데 용의 수가 놓여 있게 마련이다.
태종5년 명나라 임금이 태종에게 내린 용포가 그 후대 임금의 격식이 되어 내렸는데 어깨에 용이 걸쳐 있긴 하나 그 용포 등 양편으로 봉황을 세 마리씩 수놓음으로써 속국표시를 소홀하지 않았다. 조선조의 임금들이 입었던 용포에 수놓인 용의 발톱수를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다섯개 아닌 네개일 확률이 높다.
새로 단장한 경복궁 근정전 용상이 있는 천장에는 두마리 용이 그려져 있다. 중국 사대(事大)시절에 천자의 독점물인 용을 그려두게 할 턱이 없다. 알아보니 우리나라가 청일전쟁 후 약화된 중국의 기반에서 독립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후 당시 집무처이던 경복궁 근정전 천장의 봉황 그림을 용 그림으로 바꿔 대한 제국을 표방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당시 집무를 보지 않던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용상 천장그림은 두 마리 봉황으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근정전의 용과 인정전의 봉황은 한국사의 야누스적 단면을 상징으로 웅변하는 것이 된다. 다만 그 사대 상징인 봉황을 아직도 대통령 상징문양으로 널리 쓰고 있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사 해프닝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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