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황병기

bindol 2022. 10. 28. 08:42

[이규태코너] 황병기

조선일보
입력 2003.11.21 17:14
 
 
 
 

위는 짧고 아래는 길게 보이려는 몸매 취향으로 한국의 치마가 세계 유명 패션쇼에서 뜨고 있으며, 발효 음식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김치가 세계 오지에까지 침투하고 있을뿐더러, 유럽을 비롯해 고위도 지방의 난방으로서 온돌이 그 보급 고도(高度)를 낮추어 내리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세계적으로 위상을 재확인할 한국문화는 비일비재하다. 그중 하나가 한국 전통악기인 가야금이다.

가야국의 가실왕(嘉實王)은 “여러 나라 방언이 서로 다르듯이 음색도 같지 않을 터이니 심금에 와닿게 하라” 하며 우륵(于勒)으로 하여금 음색을 동일성화(同一性化)하게 했다. 가야가 망하고 가야금 12곡을 들고 신라에 망명한 우륵은 제자로 하여금 다시 음색을 신라사람의 심금에 맞게 고치도록 했는데, 그것을 듣고 우륵은 “즐거운데도 방자하게 흐르지 않고(樂而不流) 애달프면서도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니(哀而不悲) 이것이 바로 정악(正樂)이다” 했다.

이처럼 가야금은 시발부터 시공(時空)과 조화하여 새로운 경지를 펼쳤는데,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黃秉冀)는 신라로 돌아가 우륵을 끌어들여 고금(古今)을 퓨전하고, 세계 현악기들의 소리들을 포용하여 동서(東西)를 어우렀으며, 전통을 향한 구심력과 세계를 향한 원심력의 역학에 균형을 팽팽히 잡아맨 문화의 매듭꾼이다.

 

펄벅 여사가 한국에 왔을 때 환영하는 점심 자리에서 가야금 소리를 듣더니 “사람이 우는 소리 같다” 했다. 그러고서 승용차를 타고 가는데 “아까 그 우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이는 가야금의 정수를 찌른 말로, 황병기는 그 여운을 잠재된 절박한 심금들과 좌충우돌하게 하여 한국적 심금을 끌어낸다. 만공 스님이 달빛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를 선방에 모래를 깔고 들여 그림자에 쓸리는 소리를 듣고 좌선했다더니 황병기의 가야금에서 그 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한 학승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국악의 그랑프리인 제10회 방일영(方一榮)국악상을 탄 황병기 교수의 가야금을 둔 내적(內的) 공적은 제쳐두고라도,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음역(音域)을 최대로 구사하여 현대화하고 동일성화하여 지구화시대에 한국음악의 존재 가치와 위상을 과시한 외적(外的) 공적이 돋보인다. 우륵이 그러했듯이 그 정신을 살려 지구화시대의 한국적 음색을 창출해 낸 황병기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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