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식인 최후의 의식

bindol 2022. 10. 29. 09:39

[이규태코너] 식인 최후의 의식

조선일보
입력 2003.11.13 17:28
 
 
 
 

식인 풍습이 늦게까지 남아 있던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이 악습을 청산하는 의식이 베풀어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136년 전 이 섬에 들렀던 호주의 베이커 선교사가 주민에 의해 먹혔는데 근간에 불행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베이커 선교사의 저주(詛呪) 때문이라는 예언자의 말을 믿고 이 저주를 풀고자 선교사의 5세후손을 찾아 모시고 해주(解呪)의식을 베푼 것이다.

이미 10년 전 섬에 보관돼 있던 선교사의 장화를 돌려주었으나 효력이 없자 지구에서 식인문화를 청산하는 의식으로 뜻을 키운 셈이다. 이 의식에는 피지의 총리까지 참석했다 하니 세계풍속사에 기억될 대사가 아닐 수 없다.

피지의 수도 수바의 박물관 입구에는 사람 키 높이의 돌기둥이 서 있고 그 상단부는 얼굴을 묻을 만하게 옴폭하게 파여 있다. 식인을 위한 사람잡는 돌기둥이요 1m 높이의 인육요리용 토기솥이며, 그 요리에 첨가했던 나뭇잎들이 자라는 생나무들도 기르고 있었다. 피지섬에서 식인문화가 발달한 것은 유럽사람과 접하면서 상승한 사회변동이기도 하다.

19세기 들어 백인들의 포경선과 상선 해적들이 횡행하면서 총을 들고 상륙, 강탈·강간을 일삼았고 병까지 퍼트렸다. 거기에 선교사가 상륙 나체족인 이들에게 옷을 입으라 하고 자기들 신을 저주하곤 하자 식인으로 대항한 것이다. 베이커 선교사도 그렇게 희생당한 한 사람일 것이다. 백인을 식인하면 기념비처럼 돌을 세워 영웅시했고, 1840년에 죽은 피지 추장은 그 돌이 872개에 이르렀다 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죽어 소금에 절여졌음은 「논어」에 나오고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나올 만큼 인류의 식인 역사는 유구하다.

첫째 우리 옛 효자들이 허벅짓살을 베어 병든 부모에게 먹였듯이 의료용으로 먹었고, 둘째 생전에 영력(靈力)이나 용장(勇將) 귀인의 인육을 공식하면 그 비범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술적 의미에서 먹었으며, 셋째 명나라 때 이자성(李自成)이 낙양을 함락하고 복왕(福王)을 죽여 사슴고기와 섞어 복록식(福鹿食)이라는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처럼 복수와 증오로 식인을 하기도 했다. 넷째 임진왜란 때 적 치하의 한양에서 굶어죽은 시체의 식인기록이 있듯이 전쟁이나 기근 난파선에서 굶주려 식인했고, 다섯째 피지섬에서처럼 기호품으로써 먹기도 했던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