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트리 크라이밍

bindol 2022. 10. 30. 16:26

[이규태코너] 트리 크라이밍

조선일보
입력 2003.09.24 15:24 | 수정 2003.09.24 15:35
 
 
 
 

나무 목(木)자에 절단을 뜻하는 가로 막대(ㅡ)가 상중하 어디에 걸렸는가로 뜻이 달라진다. 아래 밑둥을 자르면 쓸모로 보아서 진짜인지라 본(本)이요 윗 가지를 자르면 덜 됐다해서 미(未)이고 중간에 양쪽으로 뻗은 곁가지는 별볼일 없다해서 말(末)이다.

이처럼 나무를 쓸모로만 보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사람(人)이 나무(木) 곁에 있으면 쉰다는 뜻모음 글씨인 휴(休)가 된다는것도 바로 나무의 쓸모의 차원 전도를 예언한 것이 된다.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곳은 보리수 아래요 인류가 지혜를 얻은 곳도 에덴동산의 복판에 자라는 지혜의 나무다.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들고 와 축복했다는 몰약(沒藥)과 유향(乳香)도 지중해 연변에 자라는 나무들의 수지(樹脂)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이 성황목에 구심됐음도 나무가 방사하는 안식 기능과 무관하지 않다.

신종 레저 스포츠로 나무에 오르는 트리 클라이밍이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이웃 일본에서만도 트리 크라이밍 인구가 4000명을 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난도(難度)별로 등급을 정해 0난도에서 12난도까지 정해 종일 나무 숲속에서 농도 짙은 산소 호흡으로 일상에서 오염된 심신의 대청소를 한다.

 

한국의 전통에도 트리 크라이밍이 없지 않았다. 산사에서 높은 나뭇가지위에 좌대(座臺)를 만들어놓고 수상고행(樹上苦行)하는 관행을 40여년 전 오대산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고려 경종(景宗)의 왕비 황보씨가 아기를 낳을때 나무에 올라가서 낳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대에 수상해산(樹上解産)의 습속도 있었다. 성인식때 동아줄 타고 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타고 밑둥까지 내리는 담력 시련을 겪기도 했다.

광해군때 거부요 인색하기로 소문난 고비(高斐)에게 축재술을 물으러 오면 바지를 벗겨 알몸이 드러나게 한다음 트리 크라이밍을 시켰다. 많은 구경꾼이 보는 가운데 가지 끝까지 가게하여 나뭇가지 붙들고 늘어지라 하고, 놓으면 떨어져 죽을 것이 뻔한 손마저 놓으라 시킨다.

돈을 벌려면 창피나 남을 의식함이 없이 나뭇가지 붙들 듯 놓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트리 크라이밍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이제 축재 훈련도 되고 레저로도 각광받을 트리 크라임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