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구멍가게
서울 종로 큰길 복판에 소나 개 거위들이 낮잠 자지 못하게 금족령을 내린 것은 100년 전인 1904년의 일이요, 도로변에 ‘나무장수는 길 복판에 나뭇짐을 받쳐놓지 말 일’ ‘황토마루(세종로)에 소말뚝을 박지 말 일’ ‘종로 복판에 자리를 펴고 약재를 팔지 말 일’ 등의 표지물이 나붙어 있었다.
지금도 종로 양편에 피마(避馬) 길이라는 골목길이 곧게 나 있는데 대로를 가노라면 높고 낮은 대관들의 벽제( 除)에 쫓기고, 말 타고 가는 양반들 가는 길에 업드려 읍을 하느라 볼일 못보기에 이를 피해 골목길을 선택했던 것이 피맛길이 됐다. 하지만 이 골목길이 생긴 이유는 딴 데 있었고, 후에 피맛길로 이용됐다고 본다.
법전에 보면 앞서 3대로는 폭이 50척 내지 80척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 30척으로 줄어 있곤 했다. 상인들이 가가(假家) 곧 쉽게 철거할 수 있는 가건물을 앞다투어 내어짓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임금님의 대가(大駕) 행차가 있으면 그 전야에 과원이 나와 철거, 원상복귀시켜 놓고 다시 대가행차가 있기까지 길이 좁아지길 수축을 거듭해 내린 나일론 도로였다. 독립신문에 보면 “남문안 슈각다리 위에 북편으로 청인들이 일본사람 가가보다 내어 짓기로…” 한 것으로 미루어 가가 내어짓기는 외국 상인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처럼 관행으로 공인된 가가와 본길 사이에 작은 길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관존민비(官尊民卑)의 피맛길로 존재가치를 얻은 것은 후의 일이다.
이 상인들의 가가가 발음의 전화로 가게가 된 것이다. 옛날 영남대로 등 상경 길가에 사는 농가들에서는 고구마나 떡 짚신 같은 물건을 길가의 목판에 차려놓는 무인 물물교환을 했었다. 비가 올 성싶으면 목판을 거적집을 지어 들여놓았는데 이것이 가가의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또는 옛날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팔고 다녔던 무시로장수들이 한 마을에 들어 정자나무 아래 거적을 치고 며칠 유숙하며 벌였던 무시로 가가가 발전했다는 설, 마을 제사가 있을 때 그 제사 음식을 마을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주던 임시건물이 가가 곧 구멍가게의 뿌리라고도 한다.
이 원시 상업의 흔적인 가게가 대량판매라는 현대 물결에 밀려 급작스레 사라져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어 그 뿌리를 역사 속에 묻는 심정으로 고증해 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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