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굳게 지켜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았다
- 益堅守, 功久不下·익견수, 공구불하
당나라 (장군) 이세적이 드디어 안시성을 공격했다. … 세적은 성을 함락시키는 날 (성안의) 남자들을 모두 땅에 묻어 죽이자고 (당 태종에게) 청했다. 안시성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더욱 굳게 지켜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았다. … 당 태종은 요동지방이 일찍 추워져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병사와 말들이 오래 버틸 수 없고, 또 양식이 다 떨어져 가기 때문에 군사를 돌이키라고 명령했다.
唐李世勣, 逐攻安市. … 世勣, 請克城之日, 男子, 皆坑之. 安市人, 聞之, 益堅守, 功久不下. … 帝以遼左旱寒, 草枯水凍, 士馬難久留, 且糧食將盡, 命班師.(당이세적, 축공안시. … 세적, 청극성지일, 남자, 개갱지. 안시인, 문지, 익견수, 공구불하. … 제이료좌한한, 초고수동, 사마난구류, 차량식장진, 명반사.)
위 문장은 고려 의종 때 김부식(1075~1151)이 편찬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이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을 침공하자 성내 백성과 성주가 싸워 격퇴한 내용이다. 645년 4월 1일 이세적이 이끄는 당군(唐軍)은 요하를 건너 고구려 침공을 개시했다. 태종도 요하를 건너 이세적의 군대와 합류해 요동성과 백암성을 함락한 뒤 6월 20일 안시성을 공격했다. 고구려는 고연수와 고혜진으로 하여금 군사 15만 명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게 했지만 실패했다. 안시성 사람들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당은 60일에 걸쳐 성의 동남쪽에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성벽보다 높게 토산(土山)을 쌓아 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토산이 무너지면서 당의 작전은 큰 타격을 받았다. 겨울이 돼 날씨도 추워지고 군량마저 떨어졌으므로, 당은 할 수 없이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그해 9월 18일 서둘러 퇴각했다.
당시 안시성 장수는 야사 등을 통해 양만춘으로 전해진다. 고려 말 이색 등은 이 싸움에서 당 태종이 화살을 맞고 눈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아무튼 당 태종은 그때 얻은 병으로 649년 51세로 숨을 거뒀고, 태자에게 고구려 침공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목압서사에서 한문 공부를 한 초등학생이 “훈장님, 안시성 싸움이 어떤 것이에요?”라고 질문해 함께 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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