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920년생이신데 아주 정정하십니다.
“그런가요? 건강은 괜찮은데 백 살이 넘으니 별일이 생기기는 하네요.” (별일요?) “지난해 제주도 가려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저만 발권이 안 됐어요. 컴퓨터에 제 나이가 한 살로 떴다더군요. 대한항공만 930번 이상을 탔는데… 컴퓨터가 나이는 100을 빼고 읽나 봐요. 백 살이 넘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 항공사도 처음 겪었나 봅니다. 하하하. 5년 후에는 초등학교에 갈지도 몰라요.” (명예 교장선생님 같은 걸 하시나요?) “아니요. 3년 전인가? 제 주변에 106세 된 할머니가 계셨는데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왔대요. 별일이다 싶어 놔뒀더니 안 보내면 벌금 문다는 통지서가 또 왔답니다. 주민센터에 갔더니 여섯 살인데 손녀를 왜 학교에 안 보내느냐고 해 ‘그게 나’라고 했더니 놀라더래요. 몇 년 후에 저한테도 초등학교 입학하라는 통지서가 오겠지요? 다시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우문(愚問)입니다만 늙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글쎄요… 안 늙어봐서…. 저희 때는 60세가 되면 회갑 기념 논문집을 내고, 잔치하고, 소일하다 몇 년 후에 정년퇴직하는 게 보통이었지요. 저도 예순에 같은 행사를 했는데 그 며칠 전만 해도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하고 인사하던 후배 교수들이 이제는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요새 뭘로 소일하십니까’로 말을 바꾸는 거예요. 나는 늙었다는 생각도 없고, 늙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안 늙을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늙은이로 취급하니까 늙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요. 그래서 65세 정년퇴직하는 날 후배들 앞에서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게 사회적 책무이니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어요. 좀 오기를 부린 거죠. 그래서인지 제 책 중에 비중 있는 건 70대에 나왔어요. 학교에 있을 때가 아니고….”
―60세가 되니 비로소 철이 든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만….
“정년퇴임 후 외국에서 강연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썼는데 그러다 보니 75세가 됐더라고요. ‘이제는 좀 늙었나?’ 하고 봤는데 여전히 한창 좋은 나이인 것 같았어요. 여든세 살 땐가? 50년 지기인 안병욱 김태길 교수와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인가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셋 다 60쯤 되니까 그제야 철이 든 것 같다고 했어요. 철들었다는 게 뭐냐면…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비로소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를 말하지요.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아요. 노력만 하면 90세까지는 성장할 수 있겠더라고요. 김태길 교수도 우리 나이로 90세까지 살았는데 세상을 떠나기 7, 8개월 전까지 정상적으로 일했거든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열매를 맺을 때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사회에 열매를 주는 때가 60∼90세라고 봐요.”
―힘든 시기는 없으셨습니까.
“구십 고개가 힘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들이 대부분 그때를 전후해 세상을 떠났거든요. 살아 있는 친구들도 거동을 잘 못하고…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1920∼2017)는 정신은 좋았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요. 강영훈 전 국무총리(1922∼2016)는 몸은 건강했는데 치매로 힘들어했고…. 저도 구십 고개가 되니 확실히 신체적인 면은 내려가더군요. 그런데 희한한 게… 정신은 아니더라고요. 문장력은 50, 60대 때가 좋았지만 역사적인 통찰력과 시야는 지금이 더 넓은 것 같아요.”
―매일 수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오전 6시∼6시 반 사이에 일어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하지만 그 전에는 일주일에 5일 수영을 했어요. 50세 때까지 술, 담배는 안 했는데 지금은 와인이나 맥주만 아주 조금 마시지요. 지금도 몸에 해로운 건 전혀 안 해요. 안병욱 선생이 젊고 건강하게 살려면 공부 여행 연애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감정이 젊어야 건강한데 연애만큼 감정이 젊어지는 게 또 어디 있습니까. 흐흐흐. 30, 40대보다 70대에 연애할 때가 더 젊어지거든요.”
―실례지만 연애도 많이 하셨습니까?
“안 선생이 80대 초반 때였는데… 집 근처 카페 아가씨랑 친하게 지냈어요. 그 아가씨가 안 선생 책도 많이 읽고 친절하게 대했는데 하루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대요. 잔뜩 기대하고 2주 만에 봤는데… 아, 글쎄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더라는 거예요. 그러겠다고는 했는데 커피 맛이 뚝 떨어지더래요.” (주례 부탁을 했다면 20대였을 것 같은데… 괴테입니까?) “나이가 많아도 남녀 간의 감정에는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하하하.”
―98세 때 세금만 3000만 원을 내셨다고요.
“그땐 상금 때문에 좀 많았죠. 강연료도 있고… 재작년에는 교회 설교까지 포함해 160회 정도 했으니까요. 항상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 인세 등이 있어서 좀 많이 내기는 해요. 작년에는 15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번 달 건강보험료가 100만 원이니까… 누군가 잘 쓰겠지요?” (네? 무슨 뜻이신지….) “잘 안 믿어서 말하기 뭐한데… 전 병원을 거의 안 가요. 어쩌다 가면 의사가 언제 건강검진 받았느냐고 묻는데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안 믿기지요?” (네…. 상금은 개인적으로 안 쓰신다고 하던데요.) “내가 번 돈은 쓰지요. 하지만 상금은 내가 번 게 아니라 사회가 맡긴 돈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맡겨서 문화사업이나 사회사업 같은 데 쓰고 있지요.” (외람되지만 너무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교수 때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왔다고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지요.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는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했으니….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매일매일 실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장수하신 분들이 많습니까.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일곱 분이 100세를 넘겼죠. 그런데 공통점이 있어요. 재산이나 명예 같은 데 욕심이 없고, 화를 내거나 남 욕하지 않아요. 감정이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까.”
―선생님 칼럼을 보면 현 정부에 화가 많이 나셨던데요.
“하하하. 많이 나지요. 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은데, 사람이 미운 건 아니고 하는 일이 틀려서….”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는 권력과 힘이 지배했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법치사회에서 도덕과 윤리로 유지되는 사회로 넘어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권력으로 몰아대고 이끌어가니까… 다시 권력사회로 떨어지고 있어요. 청와대 사람들 얘기 들으면 도덕과 윤리가 없잖아요. 또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가 더 원해야 하는데 그런 건 언급하지 않고 오직 북한 정권하고만 손잡으려고 하니… 나 같은 사람은 나라 걱정이 많지요. 해방 후 김일성하고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이 뭐냐고 물으니 친일파 숙청, 토지 국유화, 지주 자본가 추방이라 하데요. 지금 여기서도 극렬 좌파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랑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는 그분인가요?
“네. 초등학교 선배에 고향도 같고,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죠. 우리 진외가 할머니가 석 달 동안 젖을 먹여 김일성을 키웠어요. 김일성 어머니와 같은 마을 출신인데 비슷한 시기에 두 분 다 친정에서 출산했거든요. 그 할머니 아들들이 공산당 때문에 죽었지요.”
―지난해 ‘국민이 정부를 더 걱정한다’는 칼럼을 쓰신 것도 그런 까닭입니까.
“사회가 유지되려면 진실 정의 휴머니즘이 있어야 해요. 이 가치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이런 가치가 다 사라지고 있어요. 지금 대통령 말을 우리가 못 믿지 않습니까? 지금 여당 대표는 물론이고 그 전 대표는 더 심했고. 정부가 국민을 걱정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국민이 나라와 정부를 걱정하게 만드니…. 새해에는 문 대통령이 좀 정직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사람이 아니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도 좀 고쳤으면 하고요.”
그는 종종 모르는 사람에게 “대학 등록금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다. 영문을 몰라 하는 김 교수에게 그들은 “어떤 분이 대신 내주시면서 ‘내가 학생 때 김형석 선생님에게 등록금을 받았는데 졸업 후 갚으러 갔더니 내게 갚지 말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라’고 하셨다”고 했다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 제자들의 선행이 그도 모르게 30여 년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분의 고언(苦言)은 진심이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형석 교수는 법 이전에 양심과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3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인데 그건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뿐 인생의 가장 낮은 단계”라며 “양심과 도덕, 윤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7세 때 도산 안창호의 설교를 듣고 뜻을 세웠다. 시인 윤동주와는 어릴 적 친구. 대학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동문수학했고, 교편(중앙고)을 잡는 동안에는 정진석 추기경을 길러냈다. 그리고 평생의 벗인 고 안병욱 교수 곁에 자신이 갈 곳을 마련해 뒀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지만 이 정도 삶이라면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올해 우리 나이로 102세가 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저는 살 만한데… 나라가 걱정”이라고 말했다.》―1920년생이신데 아주 정정하십니다.
“그런가요? 건강은 괜찮은데 백 살이 넘으니 별일이 생기기는 하네요.” (별일요?) “지난해 제주도 가려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저만 발권이 안 됐어요. 컴퓨터에 제 나이가 한 살로 떴다더군요. 대한항공만 930번 이상을 탔는데… 컴퓨터가 나이는 100을 빼고 읽나 봐요. 백 살이 넘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 항공사도 처음 겪었나 봅니다. 하하하. 5년 후에는 초등학교에 갈지도 몰라요.” (명예 교장선생님 같은 걸 하시나요?) “아니요. 3년 전인가? 제 주변에 106세 된 할머니가 계셨는데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왔대요. 별일이다 싶어 놔뒀더니 안 보내면 벌금 문다는 통지서가 또 왔답니다. 주민센터에 갔더니 여섯 살인데 손녀를 왜 학교에 안 보내느냐고 해 ‘그게 나’라고 했더니 놀라더래요. 몇 년 후에 저한테도 초등학교 입학하라는 통지서가 오겠지요? 다시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글쎄요… 안 늙어봐서…. 저희 때는 60세가 되면 회갑 기념 논문집을 내고, 잔치하고, 소일하다 몇 년 후에 정년퇴직하는 게 보통이었지요. 저도 예순에 같은 행사를 했는데 그 며칠 전만 해도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하고 인사하던 후배 교수들이 이제는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요새 뭘로 소일하십니까’로 말을 바꾸는 거예요. 나는 늙었다는 생각도 없고, 늙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안 늙을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늙은이로 취급하니까 늙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요. 그래서 65세 정년퇴직하는 날 후배들 앞에서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게 사회적 책무이니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어요. 좀 오기를 부린 거죠. 그래서인지 제 책 중에 비중 있는 건 70대에 나왔어요. 학교에 있을 때가 아니고….”
―60세가 되니 비로소 철이 든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만….
―힘든 시기는 없으셨습니까.
“구십 고개가 힘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들이 대부분 그때를 전후해 세상을 떠났거든요. 살아 있는 친구들도 거동을 잘 못하고…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1920∼2017)는 정신은 좋았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요. 강영훈 전 국무총리(1922∼2016)는 몸은 건강했는데 치매로 힘들어했고…. 저도 구십 고개가 되니 확실히 신체적인 면은 내려가더군요. 그런데 희한한 게… 정신은 아니더라고요. 문장력은 50, 60대 때가 좋았지만 역사적인 통찰력과 시야는 지금이 더 넓은 것 같아요.”
일본 조치대 유학 시절 김형석 교수(앞줄 오른쪽). 앞줄 왼쪽은 고 김수환 추기경.
―매일 수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오전 6시∼6시 반 사이에 일어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하지만 그 전에는 일주일에 5일 수영을 했어요. 50세 때까지 술, 담배는 안 했는데 지금은 와인이나 맥주만 아주 조금 마시지요. 지금도 몸에 해로운 건 전혀 안 해요. 안병욱 선생이 젊고 건강하게 살려면 공부 여행 연애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감정이 젊어야 건강한데 연애만큼 감정이 젊어지는 게 또 어디 있습니까. 흐흐흐. 30, 40대보다 70대에 연애할 때가 더 젊어지거든요.”
―실례지만 연애도 많이 하셨습니까?
“안 선생이 80대 초반 때였는데… 집 근처 카페 아가씨랑 친하게 지냈어요. 그 아가씨가 안 선생 책도 많이 읽고 친절하게 대했는데 하루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대요. 잔뜩 기대하고 2주 만에 봤는데… 아, 글쎄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더라는 거예요. 그러겠다고는 했는데 커피 맛이 뚝 떨어지더래요.” (주례 부탁을 했다면 20대였을 것 같은데… 괴테입니까?) “나이가 많아도 남녀 간의 감정에는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하하하.”
―98세 때 세금만 3000만 원을 내셨다고요.
“그땐 상금 때문에 좀 많았죠. 강연료도 있고… 재작년에는 교회 설교까지 포함해 160회 정도 했으니까요. 항상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 인세 등이 있어서 좀 많이 내기는 해요. 작년에는 15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번 달 건강보험료가 100만 원이니까… 누군가 잘 쓰겠지요?” (네? 무슨 뜻이신지….) “잘 안 믿어서 말하기 뭐한데… 전 병원을 거의 안 가요. 어쩌다 가면 의사가 언제 건강검진 받았느냐고 묻는데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안 믿기지요?” (네…. 상금은 개인적으로 안 쓰신다고 하던데요.) “내가 번 돈은 쓰지요. 하지만 상금은 내가 번 게 아니라 사회가 맡긴 돈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맡겨서 문화사업이나 사회사업 같은 데 쓰고 있지요.” (외람되지만 너무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교수 때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왔다고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지요.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는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했으니….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매일매일 실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장수하신 분들이 많습니까.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일곱 분이 100세를 넘겼죠. 그런데 공통점이 있어요. 재산이나 명예 같은 데 욕심이 없고, 화를 내거나 남 욕하지 않아요. 감정이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까.”
―선생님 칼럼을 보면 현 정부에 화가 많이 나셨던데요.
“하하하. 많이 나지요. 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은데, 사람이 미운 건 아니고 하는 일이 틀려서….”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는 권력과 힘이 지배했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법치사회에서 도덕과 윤리로 유지되는 사회로 넘어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권력으로 몰아대고 이끌어가니까… 다시 권력사회로 떨어지고 있어요. 청와대 사람들 얘기 들으면 도덕과 윤리가 없잖아요. 또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가 더 원해야 하는데 그런 건 언급하지 않고 오직 북한 정권하고만 손잡으려고 하니… 나 같은 사람은 나라 걱정이 많지요. 해방 후 김일성하고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이 뭐냐고 물으니 친일파 숙청, 토지 국유화, 지주 자본가 추방이라 하데요. 지금 여기서도 극렬 좌파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랑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는 그분인가요?
“네. 초등학교 선배에 고향도 같고,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죠. 우리 진외가 할머니가 석 달 동안 젖을 먹여 김일성을 키웠어요. 김일성 어머니와 같은 마을 출신인데 비슷한 시기에 두 분 다 친정에서 출산했거든요. 그 할머니 아들들이 공산당 때문에 죽었지요.”
―지난해 ‘국민이 정부를 더 걱정한다’는 칼럼을 쓰신 것도 그런 까닭입니까.
“사회가 유지되려면 진실 정의 휴머니즘이 있어야 해요. 이 가치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이런 가치가 다 사라지고 있어요. 지금 대통령 말을 우리가 못 믿지 않습니까? 지금 여당 대표는 물론이고 그 전 대표는 더 심했고. 정부가 국민을 걱정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국민이 나라와 정부를 걱정하게 만드니…. 새해에는 문 대통령이 좀 정직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사람이 아니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도 좀 고쳤으면 하고요.”
그는 종종 모르는 사람에게 “대학 등록금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다. 영문을 몰라 하는 김 교수에게 그들은 “어떤 분이 대신 내주시면서 ‘내가 학생 때 김형석 선생님에게 등록금을 받았는데 졸업 후 갚으러 갔더니 내게 갚지 말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라’고 하셨다”고 했다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 제자들의 선행이 그도 모르게 30여 년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분의 고언(苦言)은 진심이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