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97] 루브르와 청와대

bindol 2022. 11. 16. 15:57

[차현진의 돈과 세상] [97] 루브르와 청와대

입력 2022.11.16 00:00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1월을 기다린다. 프랑스 보졸레 지역의 해포도로 담근 ‘보졸레누보’를 맛보려는 것이다. 그것은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 출시되는데, 그날 내로라하는 프랑스의 저명인사들이 새 술을 맛보며 떠들썩한 자선 모금 행사를 벌인다.

그 행사는 보통 파리 시내 몽마르트 언덕의 포도밭에서 열린다. 포도밭이라고 해야 크기가 손바닥만 하다. 하지만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꽤 컸다. 그 포도밭은 원래 교회가 소유하다가 혁명정부가 빼앗아 국유화했다. 교회는 앙시앵 레짐 즉, 구체제에서 시민을 괴롭힌 기득권 세력이라는 이유였다.

당시 프랑스는 화폐 경제가 무너져서 물물교환 상태였다. 혁명정부는 귀족과 교회에서 빼앗은 부동산을 담보로 새로운 지폐를 발행했다. 그 돈 이름은 아시냐(assignat)였다. ‘할당’이라는 뜻이다. 혁명정부는 “국유지를 담보로 발행하는 지폐는 곧 국유지를 할당받은 증표”라며 새 돈의 가치를 장담했다. 이런 선전은 21세기에도 이어진다. 블록체인 기술로 발행하는 NFT 즉, 대체 불가능 토큰은 천문학적 가격의 예술품이나 부동산의 극히 일부만 소유하는, 조각 투자를 가능케 한다. NFT는 조각 할당의 증표요, 21세기의 아시냐다.

 

18세기 말 프랑스 국민에게 할당된 국유지의 끝판왕은 왕궁이었다. 12세기 이후 역대 왕이 살았던 루브르 왕궁이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왕궁의 으리으리한 장식과 왕실 가족들의 휘황찬란한 물건들을 무료로 감상하는 관람객들은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기를 잘했다고 믿었다.

1793년 루브르 왕궁이 공개되었다. 그렇게 출발한 것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3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다. 6개월 전 우리나라에서도 청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어 ‘청와대누보(새로운 청와대)’로 변신했다. 그곳을 국민에게 할당하고자 치른 것이 낭비일까, 국민 모두의 조각 투자일까? 여야의 셈법이 많이 다르다.